계약 연애를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영은 뜻밖의 상황을 맞닥뜨렸다.
바로 도건우의 결혼 상대 1순위, 완벽한 재벌녀가 등장한 것이다.
"오빠! 오랜만이에요."
다영이 건우와 함께 카페에서 앉아 있던 순간,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들자, 문 앞에 서 있는 여자가 보였다.
길고 윤기 흐르는 머리카락, 완벽한 이목구비,
세련된 옷차림. 여자가 봐도 사랑스럽고 눈을 뗄 수 없는 아름다움.
그녀는 자신감 넘치는 발걸음으로 건우에게 다가왔다.
"강서윤, 여기까지 어떻게 알았어?"
건우가 놀란 표정을 짓자, 여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오빠 SNS도 안 하는데,
요즘 오빠 연애 기사로 난리잖아요? 그래서 직접 보러 왔어요."
다영은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이 여자, 대체 뭐야?
"아, 소개가 늦었네요. 저는 강서윤이라고 해요."
강서윤. 국내 식품 업계 1위 푸딩제당의 외동딸이자,
도건우의 어릴 적부터 약혼자로 거론되던 여자다.
서윤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영에게 손을 내밀었다.
"직접 뵙게 돼서 반가워요. 사진으로만 봤는데, 정말 예쁘시네요."
다영은 예상치 못한 태도에 살짝 당황했지만,
이내 손을 맞잡았다.
"…반갑습니다."
서윤은 여유롭게 앉으며 건우를 바라봤다.
"솔직히 기사만 보고는 믿기지 않았어요.
오빠가 진짜 연애를 한다고 해서요. 오빠가 워낙 연애에 관심 없던 사람이잖아요."
다영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저도 가끔은 그렇게 생각하는데요."
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다영을 쳐다봤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서윤은 둘의 모습을 바라보며 눈을 살짝 가늘게 떴다.
"두 분, 정말 잘 어울리네요. 그런데 오빠,
아버지께 인사드리러 갈 계획은 있는 거예요?"
건우는 잠시 침묵하다가 차분히 대답했다.
"아직은 생각 없어."
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컵을 들어 올렸다.
"오빠 아버님이 저한테 종종 연락하세요.
요즘 오빠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해하시더라고요.
그럼, 조만간 또 볼 수도 있겠네요.
오빠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실 수도 있으니까요."
서윤이 떠난 뒤, 다영은 계속 심기가 불편했다.
자신도 모르게 커피를 휘젓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너, 혹시 나한테 질투하는 거야?"
건우가 다정한 목소리로 묻자,
다영은 당황해서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
"아니거든?! 너한테 관심 없다고 했잖아!!"
건우는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눈을 부라려?"
다영은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냥, 기분 나빠서 그래. 네가 결혼할 상대라면서 나를 무시하니까."
건우는 피식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쳤다.
"귀엽네. 너 질투하는 거 맞잖아."
다영은 얼굴이 빨개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됐어! 나 간다!"
건우는 그녀의 손목을 가볍게 잡으며 속삭였다.
"걱정 마. 내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어."
다영은 그 말을 듣고도 쉽게 감정을 정리할 수 없었다.
속에서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소용돌이쳤다.
건우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녀는 이상하게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걸 느꼈다.
카페를 나와 집으로 가는 길,
다영은 자신도 모르게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다.
혹시 건우에 대한 다른 기사나 정보가 나왔을까?
그러다 이내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니지, 내가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다영은 스스로를 다잡으며 핸드폰을 꺼버렸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강서윤의 말과 건우의 태도로 가득 차 있었다.
'정말로 나는 건우한테 관심이 없는 걸까?'
맞다, 그녀는 처음부터 계약 연애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건우가 다른 여자와 결혼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마음이 이상하게 흔들렸다.
그날 밤, 다영은 한참을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도 건우의 말이 귓가에 맴도는 것 같았다.
'내 선택은 이미 정해져 있어.'
도대체 그게 무슨 뜻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