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화: 여름이 남긴 것

8화: 여름이 남긴 것

성인이 된 김진우는 다시 고향에 섰다. 낡은 여행가방 대신 세련된 카메라 가방을 멘 그의 모습은 어릴 적 그와는 전혀 달라 보였다. 그러나 그의 발길은 자연스레 어릴 적 뛰놀던 동네로 향하고 있었다. 오랜 시간 잊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지만, 진우의 기억 속에 그 여름은 선명했다.

진우는 숲길을 따라 걷다 멈춰 섰다. 그의 앞에는 이제는 낡고 허물어진 오두막이 있었다. 어릴 적 혜주와 함께 만들었던 그들의 "여름 별장"이었다.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열렸고, 진우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갔다.

"진우야?"

익숙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를 울렸다. 진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박혜주였다. 그녀는 한 손에 스케치북을 들고 있었다. 긴 생머리가 바람에 흔들렸고, 그녀의 얼굴에는 반가움과 놀라움이 섞여 있었다.

"혜주야... 너도 여기 왔구나."

"그럼, 약속했잖아. 어른이 돼도 여기서 만나자고."

두 사람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오두막 안에서의 추억과 그동안의 삶을 이야기하며 시간은 금세 흘러갔다. 혜주는 자신의 스케치북을 펼쳐 보였다. 거기에는 여름 별장과 함께했던 어린 날의 장면들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었다.

"넌 여전히 그림을 잘 그리네." 진우는 감탄하며 말했다.

"넌 사진작가로 성공했다면서?" 혜주는 웃으며 물었다. "여전히 사진 찍는 거 좋아해?"

"응. 하지만 이곳만큼 좋은 모델을 찾은 적은 없었어. 우리 여름 별장처럼 말이야."


진우와 혜주는 문득 떠올랐다. 어릴 적 묻었던 시간 캡슐이 생각난 것이다. 두 사람은 오두막 뒤쪽의 큰 나무 아래로 갔다. 혜주는 작은 삽을 꺼내 들고 땅을 파기 시작했다.

"여기쯤이었던 것 같은데..." 혜주는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속 캡슐의 윗부분이 드러났다. 진우가 그것을 꺼내 들며 먼지를 털었다. 캡슐을 열자 안에는 오래된 그림 노트와 사진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혜주는 자신의 그림을, 진우는 그때 찍은 사진들을 손에 들고 미소 지었다.

"그때의 우리가 참 멋지지 않았어?" 혜주가 말했다.

"응. 그땐 모든 게 단순하고 아름다웠지. 지금 이 순간도 그렇고."

두 사람은 서로의 손에 담긴 과거를 바라보며 다시 한 번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그날, 진우와 혜주는 저녁 노을 아래 오랜만에 연을 날리기로 했다. 혜주가 가져온 연은 여전히 튼튼했고, 바람은 두 사람의 연을 높이 띄워 올렸다.

"이번엔 너도 연 잘 잡네." 혜주가 웃으며 말했다.

"많이 연습했거든. 너랑 다시 이 순간을 맞이하고 싶어서."

연은 하늘 높이 올라가 두 사람의 마음을 더욱 가볍게 했다. 진우와 혜주는 약속했다. 이번에는 단순히 추억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더 자주 만나며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겠다고.

"혜주야, 다음 여름에도 여기서 만나자. 이번엔 새로운 추억을 더 많이 만들자."

혜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이번엔 너 사진으로, 나는 그림으로 우리가 함께한 시간을 더 오래 남기자."

노을이 지는 하늘 아래, 두 사람의 웃음소리가 여름 별장을 가득 채웠다. 그들의 여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