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 기사와 가이드

1화 – 기사와 가이드

황혼이 드리운 전장은 여전히 피비린내가 가시지 않았다. 검붉게 물든 대지가 마지막까지 저항하던 자들의 절규를 머금은 채 식어가고 있었다. 창끝에 남아 있는 핏방울이 흐르는 걸 멍하니 바라보던 카일란 아스브론은 살짝 눈을 감았다. 심장이 뛰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다. 너무나 선명하게 들려오는 동료들의 거친 숨소리, 피가 굳어가는 냄새, 부서진 갑옷 조각이 흙바닥에 나뒹구는 소리까지.

너무 시끄러웠다.

그의 감각은 너무나도 날카롭게 벼려져 있었다. 먼 곳에서 피어오르는 불길마저 마치 곁에서 타오르는 듯이 뜨겁게 느껴졌다. 적의 움직임을 예리하게 포착해야 하는 순간에는 이 감각이 무기가 되었지만, 전투가 끝난 뒤에도 가라앉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다.

“카일란, 괜찮은가?”

그의 동료 기사, 라그나가 다가왔다. 카일란은 애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의 시야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주변의 모든 소리가 점점 더 거칠어지고, 먼지 한 점까지 피부를 찌르는 것처럼 날카롭게 감지되기 시작했다. 감각 과부하다. 이 상태가 지속되면 의식이 끊길 것이다.

그러나 누구에게도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 그는 황제의 최정예 기사였다. 왕국에서 가장 강한 전사, 감각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려 적을 압도하는 존재. 만약 그가 지금 무너진다면, 약점이 드러나면, 그의 자리는 사라질 것이다.

‘버텨야 한다.’

그러나 생각과 달리 몸은 더 이상 버텨내지 못했다. 귓가에서 울려 퍼지는 소리들이 얽히고설키며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의 몸이 무너져 내리기 직전, 누군가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손길. 그리고 낮지만 단단한 목소리.

“이대로 두면 위험하겠군.”

카일란은 희미해진 시야로 앞을 바라보았다. 검은 망토를 걸친 가녀린 실루엣, 흑발에 금빛 눈동자. 그리고 특유의 차가운 향기.

레온 페르시아였다.

**

그의 감각은 한순간에 정리되었다.

어지럽게 퍼지던 소리들이 차분해지고, 거슬리던 냄새가 가라앉았다. 피부에 닿는 공기의 감촉마저도 부드러워졌다. 카일란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몸을 짓누르던 무언가가 사라진 느낌이었다. 마치 태풍 속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레온은 조용히 손을 거두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그러나 그의 금빛 눈동자 속에는 미묘한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무리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지.”

“…내 감각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였다.”

카일란은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거짓말이었다. 한계는 이미 넘은 지 오래였다. 그의 감각은 레온이 손을 뗀 순간 다시 불안정해지기 시작했다. 눈앞의 빛이 흔들렸다.

레온은 그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진정한 가이드다.”

카일란은 무의식적으로 손에 힘을 주었다. 진정한 가이드라니. 왕국에 남아 있는 유일한 보조(가이드)는 레온뿐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황제의 학자이자 왕국의 공식 가이드였다. 그는 오직 황제만을 위해 존재하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감각 과부하로 고통받는 기사에게 힘을 빌려준다는 것은, 곧 금기를 어기는 일이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알면서 하는 건가.”

카일란이 낮게 읊조렸다. 레온은 가만히 그를 응시했다. 눈동자 깊숙한 곳에서 복잡한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당신이 지금까지 버티고 있다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해.”

“….”

“난 당신을 살릴 수 있어. 하지만 당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떠나도록 하지.”

카일란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이 감각의 고통 속에서 평생을 살아왔다. 그러나 단 한 번이라도 그것이 진정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다면?

“…네가 필요하다.”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레온은 가만히 그를 바라보다가,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그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순간, 따뜻한 기운이 번졌다. 감각이 다시금 정리되기 시작했다. 얽히고설킨 감각들이 차분히 정리되며, 그의 정신이 맑아졌다.

레온은 조용히 말했다.

“이건 우리가 해선 안 되는 일이야.”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당신을 버려둘 수 없어.”

카일란은 숨을 들이마셨다. 그의 세상은 오랫동안 날카롭고 아팠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부드러웠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감각이 평온해지는 걸 느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유대는 단순한 본능적인 연결이 아니다.

이것은, 금단의 시작이었다.


2화 – 감각적 유대

2화 – 감각적 유대

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궁정 복도를 따라 조용한 발걸음이 울렸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달빛이 유령처럼 길게 드리웠다. 그 길을

"이상한 나라의 기사"" 에피소드

더 많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