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어두운 궁정 복도를 따라 조용한 발걸음이 울렸다. 창문 사이로 비치는 희미한 달빛이 유령처럼 길게 드리웠다. 그 길을 따라 한 사람이 걸어가고 있었다.
레온 페르시아. 황제의 학자이자 왕국에서 유일하게 감각을 안정시킬 수 있는 존재. 그러나 그에게는 더 중요한 신분이 있었다. ‘황제의 전속 가이드’라는 사실이었다.
그는 지금, 금단을 저지르고 있었다.
‘카일란 아스브론. 기사단장, 황제의 검, 그리고… 나의 센티넬.’
그는 자신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었지만, 멈출 수 없었다.
레온은 자신의 방으로 향하지 않고, 조용히 궁 안쪽 별관으로 걸어갔다. 그곳은 전장에서 돌아온 기사들이 머무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단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문 앞에서 멈춘 순간, 안에서 거친 숨소리가 들렸다. 레온은 잠시 머뭇거렸다.
‘감각 과부하…’
그가 예상한 대로였다. 카일란은 지난 전투에서 이미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전장에서 돌아온 이후, 그가 버티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었다.
레온은 조용히 문을 열었다. 방 안은 어두웠지만, 어둠 속에서도 그는 침대에 앉아 있는 카일란을 볼 수 있었다. 남자는 땀에 젖어 있었고, 손으로 이마를 감싸고 있었다.
“…카일란.”
레온이 조용히 부르자, 카일란이 눈을 들었다. 그의 붉은빛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 눈에는 고통이 서려 있었다.
“왜 왔지.”
“…넌 이 상태로 버틸 수 없어.”
카일란은 이를 악물었다. 그가 손가락을 살짝 움직일 때마다 근육이 경직된 듯한 떨림이 느껴졌다. 감각이 너무 날카롭게 벼려진 상태였다.
“난 괜찮다.”
“…거짓말.”
레온은 한 걸음 다가갔다. 카일란은 마치 그가 가까이 오는 것만으로도 감각이 더 예민해지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레온은 숨을 고르고, 조용히 손을 내밀었다.
“이대로 두면 감각이 너를 집어삼킬 거야.”
카일란은 고개를 돌렸다. 그의 호흡이 가빠졌다.
레온은 선택할 수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를 돕는다면, 그 순간부터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길로 접어들 것이다.
레온은 손을 뻗어 카일란의 이마에 닿았다.
순간, 모든 감각이 연결되었다.
강렬한 감각적 유대가 형성되며, 레온은 카일란의 깊은 고통 속으로 빠져들었다.
카일란은 눈을 크게 떴다. 단순한 접촉이 아니었다. 서로의 감각이 완전히 연결된 것이었다. 모든 것이 선명해졌다. 카일란이 느끼던 혼란과 고통이 그대로 레온에게 밀려들었다.
“…레온.”
카일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레온은 숨을 들이마셨다.
“이제… 괜찮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