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렬했던 첫 만남이 지나고, 강하린은 본격적으로 **‘DO PATISSERIE’**의 주방에 들어섰다.
이도현이 허락한 3개월간의 수습 기간.
하지만 허락을 받았다고 해서 그가 친절해질 거라고 기대한 건 아니었다.
“주방에 들어가면 한 사람 몫을 해내야 합니다. 수습 기간이라 봐주는 거 없습니다.”
도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시선은 마치 그녀가 실수하기만을 기다리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하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주방 앞에 섰다. 그녀 앞에는 각종 프랑스 디저트 재료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버터, 밀가루, 초콜릿, 생크림, 그리고 수많은 스파이스들까지. 이곳은 그녀가 꿈꾸던 공간이었지만, 동시에 숨 막히게 냉정한 전쟁터였다.
그녀의 첫 번째 업무는 크루아상 반죽을 준비하는 것.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완벽한 크루아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교한 기술이 필요했다. 버터의 층을 균일하게 접어야 하고, 온도 조절을 철저히 해야 한다.
하린은 반죽을 시작하며 조심스럽게 롤링핀을 밀었다. 반죽을 한 겹씩 접으며 결을 만들었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손에 힘을 너무 줬어요.”
도현이 그녀의 뒤에서 냉정하게 지적했다. 그는 그녀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
“그렇게 하면 버터가 녹아서 겹이 사라지죠. 크루아상은 정확한 온도와 손길이 중요합니다. 손의 열로 반죽이 망가지는 순간, 끝입니다.”
하린은 입술을 깨물며 다시 반죽을 잡았다. 도현은 말없이 그녀의 손을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반죽은 기술이 아니라 감각입니다. 버터가 얼마나 차가운지, 밀가루가 얼마나 촉촉한지 손으로 느껴야 해요.”
그는 직접 반죽을 집어 들어서 손끝으로 가볍게 눌러보였다. 하린은 그가 움직이는 방식과 터치의 미묘한 차이를 관찰했다.
‘그냥 꼼꼼한 사람이 아니라, 진짜로 완벽을 추구하는구나….’
그녀는 깨달았다. 이도현은 단순한 천재 파티시에가 아니라, 자신만의 철학이 있는 장인이었다. 그가 디저트 하나하나에 집착하는 이유가 있었다.
하지만 하린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반죽을 다시 정리하며 조심스럽게 롤링핀을 움직였다. 이제는 손의 온도를 신경 쓰며 최대한 부드럽게.
그러나 주방에서의 긴장은 쉽게 풀리지 않았다.
“강하린씨, 저기 있는 커스터드 크림 좀 가져와요.”
다른 파티시에가 바쁘게 돌아가는 주방에서 소리쳤다. 하린은 재빠르게 냉장고에서 크림을 꺼냈다.
그러나 서둘러 움직이다가 그만 작업대에 놓여 있던 초콜릿 무스 볼을 건드리고 말았다.
“앗…!”
순간, 초콜릿 무스가 뒤집어지며 바닥에 쏟아졌다. 윤기가 흐르던 고급 초콜릿 크림이 하린의 앞치마와 신발까지 흘러내렸다.
주방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모든 스태프가 숨을 죽이며 도현을 바라봤다.
그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닥의 초콜릿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하린을 바라보았다.
“강하린씨!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죠?”
그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매서운 얼음 조각처럼 날카로웠다. 하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이 무스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리는 줄 알아요? 그냥 초콜릿이 아니라, 72시간 동안 숙성시킨 크림을 쓴 거라고.”
도현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바닥에 쏟아진 무스를 보며 고개를 저었다.
“넌 이곳에서 일할 자격이 없어.”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하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쉽게 물러서지 않았다.
그녀는 바닥을 닦고, 자신의 앞치마를 정리하며 조용히 말했다.
“다시 만들겠습니다.”
도현이 그녀를 노려보았다.
“다시? 네가?”
“네. 다시 만들고, 다시 배울 겁니다. 실수했다고 포기하지 않습니다.”
하린은 단단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두 눈에는 포기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도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좋아요. 한 번 해봐요.”
그렇게, 둘의 전쟁 같은 주방 생활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