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PATISSERIE의 주방이 분주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다.
직원들은 부지런히 움직이며 새로운 디저트 준비에 한창이었다.
하지만 하린은 어딘가 심란한 얼굴로 작업대 앞에 서 있었다.
전날 밤, 도현이 프랑스에서 겪었던 과거 이야기를 우연히 듣게 된 것이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선배님이… 파리에서 실패했다고요?"
하린은 믿기 어려운 표정으로 속삭였다.
그녀가 아는 이도현은 완벽주의적이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실패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충격이었다.
“그때 이후로 감정을 숨기고 완벽한 디저트만을 만들기 위해 자신을 혹독하게 다뤘다고 해.”
같이 일하는 선배 파티시에의 이야기는 짧았지만 강한 여운을 남겼다.
하린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 자신도 늘 고민하고 방황했다.
한식과 프랑스 베이킹 사이에서, 집안의 전통을 이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그리고 이제는 도현의 아픔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 사이의 공통점이 보이기 시작했다.
파리, 3년 전.
도현은 손에 쥔 접시를 내려다보았다.
정성스럽게 만든 초콜릿 무스와 헤이즐넛 크림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고 생각했지만,
심사위원의 표정은 냉담했다.
"이 디저트는 기술적으로 훌륭하지만, 영혼이 느껴지지 않는군요."
그 말은 도현에게 있어 가장 잔인한 평가였다.
"디저트는 기계적인 정밀함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감각과 감정이 있어야 해요. 당신의 디저트는 완벽하지만, 따뜻함이 없습니다."
그날 밤, 그는 주방에 홀로 남아 자신의 디저트를 다시 만들었다.
수십 번을 반복했지만, 여전히 부족했다.
그 이후, 그는 완벽한 디저트만을 만들겠다고 다짐했고,
감정을 배제한 채 오로지 정밀함과 기술만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서울, 현재.
그날 저녁, 주방에서 둘만 남게 되었다.
도현은 하린이 만든 새로운 디저트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가 연구 끝에 만들어낸 한과와 프렌치 파티세리의 조합이었다.
하지만 도현의 표정은 여전히 무미건조했다.
“균형이 아슬아슬합니다.”
그의 말에 하린은 움츠러들었지만, 곧 다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선배님, 정말로 완벽한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 목표입니까?”
도현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당연하죠. 최고의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하린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선배님께서는 완벽한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 하지만, 저는… 완벽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도현은 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
하린은 주방 한가운데 서서 도현을 바라보았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감정을 숨기지 않고, 저 자신을 온전히 담은 디저트를 만들고 싶어요.”
한 달 전, 강하린의 집.
“베이킹은 취미로 하는 거다.
네가 가업을 잇지 않겠다면, 더 이상 집으로 돌아올 생각도 하지 마라.”
아버지의 단호한 목소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하린은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아버지, 저는 제가 원하는 길을 가고 싶어요. 전통을 지키면서도,
산딸기처럼 신선하고 재료를 활용해 베이킹에도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어요.”
아버지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
“네가 그렇게 고집이 세니… 그래도 나는 네가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하린은 두 손을 꽉 쥐었다.
‘나는 반드시 증명해 보일 거야.’
도현은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의 과거를 떠올렸다.
프랑스에서 인정받지 못했던 그날 밤,
그는 감정을 숨기고 다시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지금, 하린의 말은 그의 그 결심을 흔들고 있었다.
주방은 고요했다.
한동안 침묵이 흐르다가, 도현이 낮게 한숨을 쉬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
하린은 미소를 지었다.
“알아요. 그래도 저는 제 길을 가볼 겁니다.”
그날 밤, 도현은 처음으로 하린의 디저트를 다시 한입 베어 물었다.
쌉싸름한 초콜릿과 상큼한 산딸기의 조화. 그 안에 하린의 고민과 결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두 사람은 조금 더 서로를 이해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