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PATISSERIE의 새로운 디저트 라인이 곧 출시될 예정이었다.
매장 내부는 바쁘게 돌아갔고, 마케팅 팀과 주방 직원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하린도 새 메뉴의 완성을 위해 밤낮없이 주방에서 일했다.
손끝이 갈라지고 온몸이 피로에 젖어도 그녀는 단 한 순간도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발표된 최종 디저트 라인업을 본 순간, 하린은 차가운 현실과 마주했다.
그녀가 개발한 디저트는 최종적으로 선택되었지만,
메뉴 어디에도 그녀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다.
“이건….”
하린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보고서를 들여다보았다.
개발자 명단에는 오직 ‘이도현’의 이름만이 적혀 있었다.
곧장 도현을 찾아간 그녀는 그를 불러 세웠다.
“선배님,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도현은 그녀의 손에 들린 서류를 확인했지만,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다.
“강하린 씨가 개발한 레시피지만, 최종적인 조율과 검토는 제가 했습니다.
그래서 제 이름이 들어간 겁니다.”
그의 무미건조한 말에 하린은 충격을 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제 이름을 아예 빼버리신 겁니까?”
“결과가 중요합니다.”
도현은 담담하게 답했다.
“이 메뉴가 성공하면, 그게 곧 강하린 씨의 성과로 이어질 겁니다.”
하린은 도현을 노려보았다.
“선배님은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 노력이, 제 열정이 단순히 이름 없이도 빛을 볼 거라고요?”
도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 업계는 실력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그 순간, 하린의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 내렸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분명했다.
“선배님은 늘 완벽한 결과만을 원하시죠.
하지만 저는 제 이름을 걸고 제 일을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주방은 적막에 휩싸였다. 주변 직원들이 두 사람을 몰래 바라보았지만,
도현은 여전히 무표정했다.
“강하린 씨.”
도현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하린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저, 그만두겠습니다.”
그녀는 단호하게 선언했다.
그리고 주방을 떠났다.
하린은 가게를 나오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몇 달 동안 자신이 모든 것을 쏟아부은 곳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녀는 인정받지 못했다.
바람이 차갑게 불어왔지만, 그것보다 더 차가운 것은 가슴속 공허함이었다.
그날 밤, 도현은 홀로 남아 조용히 서류를 바라보았다.
그는 알고 있었다. 하린이 없으면 이곳이 공허해질 것이라는 걸.
하지만 그는 그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잠시 후, 그는 한숨을 쉬고 핸드폰을 들었다.
하지만 하린의 연락처를 누르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이건 최선의 선택이었다.’
스스로를 설득하려 했지만, 마음 한구석이 답답했다. 그는 문득 과거를 떠올렸다.
파리, 몇 년 전.
그 역시 그때는 인정받고 싶어 몸부림쳤다.
하지만 실력만이 중요하다는 말을 들으며 결국 감정을 숨기고
철저하게 기술적인 부분만을 갈고닦았다.
그리고 그 선택이 그를 세계적인 파티시에로 만들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이 있었다.
과정에서 감정... 인간미를 잊어버린 것이다.
디저트 또한 인간이 만드는 하나의 작품이지만
그는 감정을 배제한 채 무섭게 완벽한 디저트를 만드는 것에만 집중했던 것이다.
다음 날 아침, 하린의 빈 작업대를 보며 도현은 비로소 깨달았다.
그녀는 단순한 후배가 아니었다.
그녀는 자신이 감정을 숨길 수 없을 만큼 중요한 사람이 되어버렸다.
도현은 하린이 있는 동안 자신의 감정을 마음대로 표현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아주 큰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떠날 준비를 마쳤다.
그는 조용히 혼잣말처럼 말했다.
“난 틀렸을까….”
이제, 그녀를 붙잡을 수 있을까?
하린이 떠나기로 결심한 다음 날 밤, 도현은 결국 그녀를 찾아 나섰다.
가게에서 그녀가 머물던 작은 원룸 앞까지 왔지만, 문 앞에서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조용히 문을 두드렸다.
몇 초의 정적 후, 문이 열리며 하린이 나타났다.
그녀는 예상치 못한 방문에 놀란 듯 눈을 깜빡였다.
"선배님...?"
도현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지만, 그의 눈빛은 흔들리고 있었다.
"강하린 씨, 이야기할 시간이 있습니까?"
하린은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문을 열어주었다.
도현은 조용히 안으로 들어갔다.
작은 원룸 안에는 그녀가 짐을 싸던 흔적이 보였다.
이곳을 떠날 준비를 이미 끝낸 듯했다.
“떠날 생각이 확고하군요.”
“네, 선배님께서도 알고 계셨잖아요. 더 이상 이곳에서 제 자리는 없다는 걸요.”
도현은 주먹을 살며시 쥐었다가 풀었다. 그는 감정을 다잡으며 말했다.
“제 이름을 빼고 싶었던 게 아닙니다. 하지만… 제 선택이 틀렸던 걸 이제야 알았습니다.”
하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와서요? 선배님은 언제나 결과만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과정도 중요했습니다.”
도현은 짧은 침묵 끝에 말했다.
“…강하린 씨, 당신을 이렇게 보내고 싶지 않습니다.”
하린은 입술을 깨물었다. 방 안은 조용했고,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이 고요하게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