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현은 대학교 졸업작품 사진 프로젝트를 위해 도시 외곽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다. 평소에도 사진 찍기를 좋아하던 그녀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사람들에게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장소들을 찾아가고, 그곳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를 사진에 담는 것이 그녀의 목표였다.
낡고 버려진 공간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다. 녹슨 금속, 깨진 유리, 오래된 콘크리트 벽에 스며든 시간의 흔적들은 그녀에게 한 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이 모든 것이 나현을 카메라를 들게 했다. 이번에도 그녀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찾은 도시 외곽의 폐건물을 탐험하기로 결심했다.
이른 아침, 나현은 기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했다. 구름이 잔뜩 낀 하늘 아래, 도시와 떨어진 풍경은 고요함 그 자체였다. 가방에는 카메라와 삼각대, 그리고 물과 간단한 간식만 담겨 있었다. 목적지에 도착한 그녀는 오래된 공장처럼 보이는 커다란 건물을 발견했다. 벽에 벗겨진 페인트와 이끼가 뒤덮인 외관은 그 자체로 매혹적이었다.
"완벽해."
나현은 혼잣말을 하며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문이 덜컹거리며 열리는 소리가 낡은 공간에 울려 퍼졌다.
내부는 더 황폐했다. 천장에서 떨어진 철근과 바닥에 깔린 먼지, 그리고 어딘가에 남아 있는 기계 부품들.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그녀의 마음은 차분해졌다. 한 장, 두 장. 이 장소가 가진 오래된 숨결을 카메라에 담으며 그녀는 점점 더 깊은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몇 걸음 더 갔을 때, 그녀의 귀에 낯선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목소리였다. 이곳은 분명히 비어 있는 곳일 텐데. 호기심과 경계심이 동시에 그녀를 사로잡았다.
"뭐지? 이 시간엔 사람이 있을리가 없을텐데?"
나현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천천히 다가갔다. 소리가 점점 더 또렷해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눈앞에 충격적인 광경이 펼쳐졌다.
넓은 창고 한가운데,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현금 다발과 가방들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가방이 열리자, 그 안에서 하얀 가루가 담긴 투명 봉지들이 쏟아졌다.
"이게... 뭐야?"
나현은 충격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몸을 숨기며 카메라를 들어 그 장면을 몰래 찍었다. 하지만 긴장한 탓인지 손가락이 실수로 셔터를 눌렀고, 플래시가 터지며 공간이 순간적으로 환하게 밝혀졌다.
"누구야!"
거친 목소리가 창고 안에 울려 퍼졌다. 나현은 숨이 멎을 것 같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거래를 하던 두 조직의 시선이 모두 그녀를 향했다.
강재혁은 거래 한가운데서 소란이 일어나자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에 보인 것은 도망치려는 여자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상대 조직의 보스는 이미 그녀를 주시하고 있었다.
"저 여자, 우리가 처리하지. 목격자는 남기면 안 되잖아."
상대 보스는 미소를 지으며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나현은 공포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 그녀의 숨소리가 거칠게 들렸다. 하지만 상대 조직의 부하들이 그녀를 잡으려 접근하는 순간, 재혁이 앞으로 나섰다.
"잠깐."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모든 시선이 그를 향했다. 재혁은 상대 보스를 향해 말했다.
"그럴 필요 없다. 이 여자는 내가 처리하지."
상대 보스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네가? 왜?"
재혁은 고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내 방식이 더 깔끔하니까."
상대 보스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하지만 실수하면 책임은 네 몫이다."
재혁은 나현에게 다가가 그녀의 팔을 단단히 잡았다.
"따라와."
"뭐 하시는 거예요? 저 그냥 사진 찍으러 왔을 뿐이라고요!"
나현은 몸부림쳤지만, 재혁의 힘에 저항할 수 없었다. 그의 표정은 냉정했지만, 그 속에 깔린 무언가가 그녀를 위축시켰다.
재혁은 그녀를 이끌며 말했다.
"넌 지금 봐서는 안되는걸 보고 말았다. 죽고싶지 않다면, 순순히 따라오는게 좋을거다."
차에 올라탄 나현은 창밖으로 멀어지는 건물을 바라봤다.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완전히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