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은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나현은 잔뜩 겁에 질려 창밖을 바라봤다. 익숙하지 않은 도시 외곽의 풍경이 빠르게 뒤로 지나갔다. 그녀는 두 손을 꼭 쥐고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옆자리에 앉아 있는 강재혁은 운전 중인 부하에게 간단한 지시만 내릴 뿐, 나현에게는 단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죠?"
나현은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렸지만, 적막이 너무나 답답하게 느껴졌다.
재혁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눈빛은 여전히 차가웠다.
"네가 안전해질 곳으로."
그는 짧게 대답했다.
"전 아무것도 안 봤어요. 정말이에요!"
나현은 간절한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냥 졸업작품 사진 찍으러 왔다가, 잘못 들어간 거예요. 그러니까 저 좀 놔주세요."
재혁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지금 널 놔두면, 상대 조직이 널 죽일 거야. 그게 그들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이거든."
나현은 그의 말에 숨이 멎을 것 같았다.
"죽인다고요...? 하지만 전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
"그게 중요하지 않아."
재혁은 차갑게 말했다.
"네가 봤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넌 위험에 처한 거야."
차는 도시 외곽을 벗어나 더 깊은 지역으로 들어섰다. 나현은 창밖으로 보이는 나무들과 어두운 도로를 보며 두려움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차는 고급스러운 주택가로 들어섰다. 거대한 철문이 열리고, 차가 고급스러운 현대식 저택 앞에 멈춰 섰다.
재혁은 차 문을 열며 나현을 바라봤다.
"내려."
나현은 주저했지만, 그의 냉랭한 태도에 어쩔 수 없이 따라 내렸다. 집 안은 외부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인테리어가 돋보였고, 곳곳에는 고가의 예술품들이 놓여 있었다. 하지만 나현은 이곳이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이게 무슨... 감금인가요?"
그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재혁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비웃었다.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면 그렇게 생각해. 하지만 넌 여기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어."
"왜 저를 이렇게까지... 제가 뭘 잘못했나요?"
나현은 울먹이며 항의했다.
“있어서는 안될 곳에 있었던 것이 너의 잘못이다. 얌전히 있으면 곧 돌아갈 수 있도록 해줄테니 허튼짓 할 생각은 하지 마라”
그녀를 방에 들여보낸 뒤, 재혁은 부하에게 간단한 지시를 내렸다.
"그녀의 소지품을 처분하고, 방 근처에 사람 붙여. 그녀가 도망치지 못하게."
문이 닫히고 나현은 방 안에 홀로 남았다. 이 방은 단순하지만 고급스러운 가구들로 꾸며져 있었지만, 그녀에게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창밖을 보니, 높은 담장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현은 창가에 앉아 손을 꼭 쥐고 중얼거렸다. 그녀는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한다고 결심했지만, 재혁의 눈빛과 그의 세계에서 느껴지는 위협이 그녀를 두렵게 했다.
그날 밤, 나현은 잠을 이루지 못한 채 창밖을 바라봤다. 한편 재혁은 자신의 서재에서 혼자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의 눈은 어딘가 멍한 듯,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왜 굳이 그녀를 데리고 왔지..."
그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상대 조직에게 그녀를 넘겼다면 모든 것이 간단히 끝났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를 죽음으로 내몰 수 없었다. 재혁의 기억속에서 아련하게 한 여성이 자신을 향해 미소 짓던 모습이 스쳐지나갔다.
"이건 단순한 감정 문제가 아니야."
그는 스스로를 설득하려 애썼다. 하지만 가슴 한구석에 남은 의문이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