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차가운 얼굴

4화: 차가운 얼굴


이른 새벽, 재혁은 집을 떠났다. 그의 행선지는 도시 외곽의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부두였다. 어둠 속에서도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과 차량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재혁은 검은 정장을 단정히 입고 차에서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감정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보스, 준비됐습니다."

한 부하가 다가와 낮게 보고했다. 재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부두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부두 한쪽에는 상대 조직의 주요 인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 남자는 재혁을 보자 험악한 미소를 지었다.

“이야~ 이게 누구신가? 소문으로만 듣던 ‘흑요석’ 강재혁을 실제로 만나게 될 줄이야 ”

재혁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조건은?"

짧고 단호한 목소리가 부두의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또렷이 들렸다.

상대는 미소를 거두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물건의 반은 오늘, 나머지는 다음 주. 대신, 너희 쪽에서도 보증이 필요하다."

재혁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상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봤다.

"거래를 원하면 협박 따위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내가 왜 여기까지 온 건지 잊지 마라."

상대는 재혁의 말에 순간 굳어졌다. 그의 눈빛은 살벌하게 차가웠다.

"농담이었을 뿐이야. 너처럼 차가운 사람한테 농담이 통하지 않을 줄은 알았어야 했지."

재혁은 더 이상 대꾸하지 않고 서명을 마쳤다. 곧 물건들이 서로의 트럭으로 옮겨졌고, 거래는 신속하게 끝났다.


거래가 끝난 뒤, 부하들이 재혁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보스, 방금 상황에서 조금 더 시간을 끌었으면 추가 정보를 얻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재혁은 부하의 말에 냉소를 띤 미소를 지었다.

"필요 없는 시간 낭비는 하지 마라. 필요할 때 내가 나서겠다."

그의 목소리는 부하들을 압도하며 그들의 반론을 잠재웠다.


저택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재혁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머릿속은 아까부터 떠오르던 사라의 기억으로 어지러웠다. 그녀와 함께 웃으며 걸었던 순간, 그녀의 손을 잡았던 순간,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녀의 손을 놓쳐야만 했던 순간이 뒤섞이며 재혁의 가슴을 조여왔다.

그는 무거운 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아무리 애써도 사라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았다. 그리고 나현. 그녀의 모습이 다시금 재혁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저택에 도착했을 때, 나현은 창가에 앉아 재혁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창문 밖에서 차가 다가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어두운 밤하늘 아래 저택의 정문이 열리고 검은 차가 천천히 들어오는 모습을 보며 그녀의 가슴은 조심스레 뛰기 시작했다.

문이 열리고 재혁이 들어왔다. 그는 나현을 보자마자 시선을 피하며 짧게 말했다.

"왜 아직 안 자고 있는 거지?"

나현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를 바라봤다.

"잠이 안 와서요. 낯선 곳에서는 잘 못자는 타입이라. 특히 이런 상황에서는.."

재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따뜻한 코코아라도 준비시킬테니, 마시고 좀 자둬라. 내일은 가야할 곳이 있으니 ”

그의 차가운 말투에 나현은 움츠러들었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가야 할 곳이요?”

재혁은 그녀의 순수한 눈망울을 바라보며 순간적으로 눈빛이 흔들렸지만, 곧 다시 냉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녀석들은, 너를 완벽하게 처리시키길 원하니까.” ”…네? “

그녀의 공포섞인 눈을 보며, 재혁은 또 다시 사라의 모습을 떠올렸다. 사라의 마지막 모습 재혁을 붙잡으며 무섭다고 이야기 하던 것이 마치 어제 겪을 일인 듯 생생하게 그의 눈 앞에 아른거렸다. 그는 애써 나현의 눈을 피하며 뒤를 돌았다.

”….그냥…. 확실히 처리한 것처럼 연출하는 것 뿐이니… 걱정은 할 필요 없다. ”

그는 자신의 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재혁은 숨을 길게 내쉬며 벽에 기대어 섰다. 그의 머릿속에는 다시금 사라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녀의 웃음소리와 나현의 말투가 겹쳐지며, 그의 마음은 혼란으로 가득 찼다.

"왜 지금..."

그는 스스로에게 물으며 서랍 속 사진을 다시 열어볼까 고민했지만, 결국 서랍을 열지 않았다. 대신 그는 차가운 물로 얼굴을 씻으며 흔들리는 자신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한편, 나현은 재혁의 차가운 태도 뒤에 숨겨진 그의 진짜 모습이 궁금해졌다. 그녀는 침대에 누우며 그의 복잡한 표정과 단호한 말투를 떠올렸다.

"뭔가 숨기고 있어... 분명히."

그녀는 속삭이며 눈을 감았다. 그러나 그녀의 마음속에는 이미 재혁에 대한 묘한 호기심이 자리 잡고 있었다.

5화: 위험한 연극

5화: 위험한 연극

아침 공기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재혁은 준비를 끝낸 후 나현의 방으로 갔다. 문을 열며 짧게 말했다. "준비해. 떠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