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는 차갑고 날카로웠다. 재혁은 준비를 끝낸 후 나현의 방으로 갔다.
문을 열며 짧게 말했다.
"준비해. 떠나야 한다."
나현은 그의 차가운 태도에 당황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는 건데요?"
재혁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았다.
"니가 죽었다는걸 상대 조직에게 확인시키는 자리다. 제대로 해야 한다. 그래야 네가 살아남을 수 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은 여전히 감정을 감추고 있었지만, 말 속에 담긴 묘한 진심이 느껴졌다. 나현은 한숨을 쉬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한 시간 뒤, 재혁과 나현은 외곽의 폐창고에 도착했다. 창고 주변은 황량했지만, 이미 상대 조직의 차량 여러 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재혁은 나현을 보며 간단한 지시를 내렸다.
"이제부터 넌 시체다. 숨도 쉬지 마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끝이다."
나현은 그의 단호한 목소리에 긴장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 부하들이 나현을 드럼통 안에 눕혔다. 얼음과 가짜 피가 그녀의 몸을 덮으며 차가운 감촉이 피부를 얼얼하게 했다.
"이렇게 해야 네가 살아남을 수 있다."
재혁은 나직이 중얼거리며 드럼통 뚜껑을 덮었다.
재혁은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미 상대 조직의 보스와 주요 인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상대 조직의 보스는 재혁을 보며 비웃듯 말했다.
"이야, 강재혁. 오랜만이군. 그 애송이는 잘 처리했겠지?"
재혁은 그의 말을 무시하고 차분히 말했다.
“못 보던 사이에 의심이 많아졌군"
보스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알다시피 좀 꼼꼼한 편이어서 말이지."
부하들이 드럼통을 가져오자, 보스는 가볍게 손짓하며 뚜껑을 열라고 지시했다. 뚜껑이 열리자, 드럼통 안에서 가짜 혈흔과 얼음에 덮인 나현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녀는 완벽하게 움직임을 멈춘 상태였다.
보스는 나현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냥 보기엔 충분하지 않아.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그는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찔러보면 알겠지."
재혁의 눈빛이 일순간 흔들렸지만, 그는 곧 냉정함을 되찾았다.
“드럼통 닫아”
재혁의 한마디에, 조직원들은 드럼통을 닫아 뒤로 뺐다. 나현은 순간 심장이 멎는 것을 느끼면서 극심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이상, 추잡하게 굴지는 않았으면 하는데? 큰 조직원에 보스답지않게 작은부분에 목숨거는 타입이군? 이렇게까지 이 쪽을 믿지 못하면 우리도 그쪽과의 거래는 좀 더 생각해봐야겠어.”
보스는 재혁의 말에 주춤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다가 칼을 내려놓으며 비웃듯 말했다.
"좋아. 그럼 이쯤에서 끝내도록 하지”
창고 밖으로 나온 재혁은 차 안으로 돌아와 숨을 고르며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나현은 드럼통에서 꺼내져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온몸이 얼어붙은 듯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재혁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가웠다.
” 녀석들은 집요하다. 집으로 돌아가려면 그들의 감시가 완전히 사라진 후여야 할거다.”
그의 차가운 말투에도, 나현은 그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얼마나 위험한 상황을 감수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를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예요?"
재혁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니까."
그의 말은 나현에게 알 수 없는 여운을 남겼다. 그녀는 조용히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며 그를 둘러싼 비밀과 과거에 대해 더 깊은 궁금증을 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