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실험 종료 후, AI 시스템은 새로운 결론을 내놓았다.
✔ 이재현과 정수아, 100% 적합도 유지 ✔ 그러나 연애 성공 확률은 인간의 감정에 의해 좌우됨
수아는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연구소의 AI가 최종 분석 결과를 도출하는 순간이었다.
평소라면 연구 데이터에 대한 분석에만 집중했을 테지만,
이번만큼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결국, 결과가 어찌 됐든 선택은 내 몫이라는 거네.'
재현도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이내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던졌다.
“봐, 결국 AI도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하잖아.”
수아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맞다. AI는 단지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했을 뿐이다.
그 데이터를 바탕으로 감정을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었다.
그녀는 문득 실험 초반, 이 모든 걸 '오류'라고 치부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리고 지금은?
“이건 데이터가 아니라… 그냥 우리가 선택하는 거야.”
재현이 그녀를 바라봤다.
그의 시선에는 더 이상 장난기가 서려 있지 않았다.
진지하고도 깊은 눈빛이었다.
“그럼, 선택해 볼래?”
그 말에 수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실험이 끝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연구소를 나가면 더 이상 이 관계를 지속할 이유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아니게 되는 것도 아니었다.
그 순간, 연구소의 직원들이 하나둘씩 떠나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실험 데이터를 신경 쓰지 않았다.
하지만 수아는 그 자리에서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재현이 천천히 손을 내밀었다.
“내 선택은 너야.”
수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을 마주 잡았다.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그 온기는 데이터가 아닌,
확실한 현실이었다.
그 순간, 연구소 창문 밖으로 저녁노을이 비쳤다.
붉게 물든 하늘 아래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났을 때는 서로를 견제하며 으르렁거렸던 사이였다. 하지만 지금은?
재현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 진짜 연애 한번 해볼까?”
수아는 그의 말을 곱씹었다.
진짜 연애라니. 처음엔 이 실험이 단순한 오류라고 믿었지만,
이제는 그마저도 핑계일 뿐이었다.
결국, 수아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해보자.”
재현이 그녀의 손을 잡아 살짝 흔들었다.
그리곤 장난스럽게 말했다.
“근데, 너 아직도 나보다 코딩 못하는 거 인정 안 할 거야?”
수아는 픽 웃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밀쳤다.
“연애 시작하자마자 싸우고 싶어?”
“싸우는 것도 연애의 일부라던데?”
두 사람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향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더 이상 알고리즘이 아닌, 스스로의 선택으로 만들어가는 관계였다.
며칠 후, 연구소를 완전히 떠나는 날.
수아와 재현은 연구소 앞에서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이곳에서 시작된 실험, 예상치 못한 감정들, 그리고 두 사람을 이어준 우연 같은 운명.
“이제 넌 내 라이벌 아니야.”
수아가 조용히 말했다.
재현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이제 넌 내 여자친구니까.”
그 순간, 수아는 얼굴이 붉어지는 걸 느꼈다.
재현은 한 박자 늦게 웃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럼 가자.”
그리고 두 사람은 나란히 걸어갔다.
더 이상 실험의 일부가 아닌, 스스로 만들어가는 현실 속으로.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처음으로 실험이 아닌 ‘진짜 데이트’를 했다.
연구소가 아닌, 단둘만의 공간에서.
수아는 카페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문득 생각했다.
처음엔 모든 게 불가능하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아 있는 지금,
모든 것은 너무도 당연한 듯 흘러가고 있었다.
“뭐해?”
재현이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갑자기 생각이 많아 보여서.”
수아는 잠시 고민하다가 솔직하게 말했다.
“그냥… 이 모든 게 신기해서.”
재현이 미소 지었다.
“나도 그래.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잖아.”
그는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그러니까, 나한테 잘해.”
수아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건 네가 나한테 잘해야 하는 거 아니야?”
“우리 같이 잘해 보자.”
재현이 손을 내밀었다.
수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이번엔 실험도, 데이터도, 알고리즘도 아니었다.
그냥, 감정이었다.
그렇게, ‘수치’가 아닌 ‘진짜’ 감정이 존재하는 연애가 시작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