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이 지속될수록 수아와 재현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진다.
연구소에서 정한 알고리즘은 명확했지만, 감정이라는 변수는 예상보다 훨씬 복잡했다.
📌 네 번째 미션: 감정 데이터 정밀 분석
✔ 특정 상황에서 심박수, 신경 반응 측정하기
✔ 실험자의 감정적 동요 여부 분석
✔ ‘진짜 연애 감정’이 싹틀 가능성 검토
“넌 진짜 연애할 때도 이렇게 논리적으로 분석하냐?”
재현은 실험실의 데이터를 검토하며 피식 웃었다.
테이블 위에는 두 사람이 지난 몇 주 동안 쌓아온 데이터들이 정리되어 있었다.
심박수 변화, 음성 톤 분석, 대화 패턴까지 모두 기록된 상태였다.
“연애도 결국 패턴이 있거든.”
수아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어딘가 불편한 기분이 들었다. 데이터는 점점 한 가지 결론을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감정이 생기고 있다.’
그러나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그럼, 우리가 지금 서로한테 영향을 받고 있다는 뜻인가?”
재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고 진지했다.
수아는 순간 당황했다. 실험이 단순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점점 현실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럴 리가 없지. AI도 가끔 오류가 나잖아.”
그 말에 재현은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이 감정도 오류일까?”
그날 밤, 연구소를 나선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나 서로를 의식하는 기류는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며칠 후, 연구소에서는 또 다른 실험이 진행되었다.
이번 실험의 목표는 비교 실험이었다.
즉, 두 사람이 실제 연애를 하고 있다고 가정했을 때와 아닐 때,
감정적 변화를 얼마나 보이는지 측정하는 것이었다.
“오늘부터 실험이 조금 더 강도 높게 진행될 거야.”
연구소의 팀장이 설명하자, 수아는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강도 높게라니? 실험이라면 단순한 데이터 분석이나 행동 관찰일 줄 알았는데.
“어떤 방식인데요?”
재현이 대신 물었다.
“간단해. 너희가 실제 연인이었다면 어떤 행동을 할까, 직접 체험하는 거지.”
그리고 연구소는 ‘우연한 스킨십’, ‘감정적인 대화’,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환경 제공’ 같은 요소를 추가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 제한된 공간에서 단둘이 시간을 보내도록 설정
✔ 감정적으로 의지해야 하는 상황 유도
✔ 상대방에게 직접적인 질문을 던지고 감정을 확인하도록 유도
이러한 실험이 시작되면서, 수아와 재현은 점점 더 감정적으로 얽혀가기 시작했다.
하루는 연구소 측의 실험으로 인해 단둘이 저녁을 먹게 되었다.
형식상 실험이었지만, 분위기는 이전과 달랐다.
테이블 건너편에서 재현이 조용히 수아를 바라봤다.
“왜 그렇게 봐?”
“너 이제 나한테 많이 익숙해진 것 같아서.”
수아는 손에 들고 있던 포크를 내려놓고 재현을 노려봤다.
“뭐?”
“처음에는 나랑 같이 있는 것도 불편해하더니,
지금은 자연스럽잖아.”
“……그건 그냥 실험이 익숙해져서 그런 거지.”
“그래?”
재현은 미소를 지으며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그럼 지금 내가 네 손을 잡으면, 아무렇지도 않을까?”
순간, 수아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지)
“뭐, 뭐?”
“실험이잖아. 너도 논리적으로 생각해 봐.
우리가 실제 연인이었다면, 이 정도는 자연스럽겠지?”
수아는 말문이 막혀 눈을 깜빡였다.
그리고 그 순간, 재현이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손을 감쌌다.
따뜻했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리고, 이상할 정도로 안정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도, 수아는 그 손을 뿌리칠 수 없었다.
다음 날, 연구소에서 진행된 감정 데이터 분석 결과가 공개되었다.
연구팀은 심박수 그래프와 감정 변화 수치를 비교하며 말했다.
“특정 상황에서 두 사람의 반응이 연애 초기 단계와 유사합니다.”
수아는 당황한 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녀와 재현의 데이터는 분명 연애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건 그냥 실험 환경 때문일 거야.”
그러나 재현은 다르게 반응했다.
그는 천천히 수아를 바라보며 말했다.
“만약 이게 실험 때문이 아니라면?”
순간, 수아의 가슴이 요동쳤다.
“그럴 리 없어.”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