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어둠이 걷히고, 신비로운 빛이 동굴을 감싸기 시작했다.
리안과 에르반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까지 그들을 덮쳐오던 괴물은 자취를 감추었고,
대신 눈앞에는 거대한 빛의 형상이 서 있었다.
그 형상은 은은한 빛을 내뿜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시험은 끝났습니다."
리안은 숨을 삼켰다.
"당신은… 누구죠?"
에르반은 조용히 손을 쥐며 말했다.
"사랑의 신."
빛의 형상은 미소를 머금은 듯 따스한 기운을 발산했다.
"운명은 끊어질 수도 있지만, 선택으로 다시 이어질 수도 있다."
리안은 사랑의 신의 말에 가만히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끊어졌던 붉은 실이 여전히 그곳에 감겨 있었지만, 이어질 조짐은 없었다.
"왜 제 실은 아직 엮이지 않은 거죠?"
리안이 조심스레 물었다.
"운명은 단순히 정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당신이 선택해야 하는 길이죠."
리안은 순간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여태까지 붉은 실이 모든 인연을 정해주는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사랑의 신은 분명히 말했다. 선택해야 한다고.
그때, 에르반이 천천히 리안을 바라보았다.
"당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세요, 리안."
리안은 그의 말을 되새기며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그동안 그가 만났던 수많은 인연들, 이어지고 끊어졌던 실들…
모두가 정해진 운명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는 이 실을 다시 엮고 싶었다.
"에르반."
리안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은 왜 제게 이토록 헌신하는 겁니까?"
에르반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는 당신과 같은 길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리안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같은 길이라뇨?"
에르반은 손목을 걷어 올렸다.
거기에는 희미하게 남아 있는 붉은 실의 흔적이 있었다.
"저 역시 실이 끊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모험을 떠났죠."
리안은 놀라며 그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떻게 그걸 찾았습니까?"
에르반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숲에서 요정을 만났습니다.
그 요정은 제게 말했죠. 동굴로 가는 길에서 인연을 만나게 될 거라고."
리안의 심장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요정은 경고했습니다. 제 존재를 밝히면,
리안 당신의 운명은 다시 한 번 위험에 처할 것이라고."
리안은 숨을 삼켰다.
"그래서… 당신은 제게 모든 걸 말하지 않았던 건가요?"
에르반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리안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는 답답했다. 하지만 동시에 따뜻한 감정이 밀려왔다.
"당신은 대체 누구죠?"
에르반은 조용히 리안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운명에서 벗어나 당신을 찾아온 사람입니다."
붉은 실이 이어지는 순간
사랑의 신이 조용히 손을 뻗었다.
"이제, 당신들의 운명을 선택하세요."
리안은 에르반을 바라보았다. 에르반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리안은 손을 내밀었다.
"에르반, 당신과 함께 가고 싶습니다."
에르반은 미소를 짓고, 리안의 손을 잡았다.
그 순간—
붉은 실이 빛을 내며 두 사람을 감쌌다.
신비로운 빛이 동굴을 가득 메웠고, 붉은 실은 찬란하게 엮였다.
두 사람의 손목을 따라 실이 엮이는 순간,
마치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운명이 다시 이어지는 듯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리안은 따뜻한 감각을 느꼈다. 실이 감기며, 그의 가슴 속 깊은 곳까지 따스한 기운이 퍼졌다.
이제야, 진정한 운명을 찾은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두 사람은 다시 리안의 공방으로 돌아왔다.
리안은 공방의 문을 열며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
이곳은 언제나처럼 따뜻했고, 창가에는 햇빛이 가득 쏟아지고 있었다.
"이제부터 다시 붉은 실을 엮는 일을 하게 되겠군요."
에르반이 조용히 말했다.
리안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지만 이번에는 혼자가 아닙니다."
그는 손목에 감긴 붉은 실을 바라보았다.
그 실은 이제 단단히 엮여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운명이 아니라, 자신이 선택한 인연이었다.
운명은 선택하는 것
어떤 인연은 처음부터 이어져 있고,
어떤 인연은 끊어지기도 하며,
어떤 인연은 다시 엮일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운명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라는 사실.
리안과 에르반은 그 선택을 함께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