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은 짙어진 어둠 속에서 홀로 서 있었다.
스승 알데르의 마지막 말이 그의 머릿속을 맴돌았다.
"너는 스스로의 인연을 깨달을 때에만, 다시 붉은 실을 잇게 될 것이다."
리안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텅 빈 손목은 그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잊지 않도록 일깨워주었다.
더 이상 머뭇거릴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운명을 되찾기 위해 떠나야 했다.
리안은 공방을 정리한 후, 긴 여행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의 목적지는 ‘운명의 숲’이었다.
오래된 문헌에 따르면, 그곳에는 붉은 실을 되찾을 수 있는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전해졌다.
여행길은 험난했다.
도시를 벗어나 평원을 지나자 날씨가 변덕스럽게 변했다.
때로는 햇살이 따뜻하게 비췄고, 때로는 거센 바람이 그의 발길을 막았다.
리안은 지도를 펼쳐 보며 방향을 확인했다.
운명의 숲은 사람들의 발길이 잘 닿지 않는 깊은 산맥을 지나야만 도달할 수 있는 곳이었다.
여정이 길어질수록 리안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자신이 그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
남들의 실을 엮으며 살아온 시간들, 그리고 정작 자신의 인연에는 무심했던 지난날들.
“정말… 실을 되찾을 수 있을까?”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나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의 손목에 다시 실이 감길 때까지 그는 멈추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길을 따라 걷던 리안은 오래된 폐허처럼 보이는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은 한때 번성했던 듯했지만, 지금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벽돌 건물들은 무너져 있었고,
바람이 마른 풀을 스치며 을씨년스럽게 울렸다.
마을 중앙에는 한 노파가 장작을 쌓고 있었다.
그녀는 리안을 보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낯선 여행자구나. 무얼 찾고 있느냐?”
리안은 노파에게 다가가 예를 갖추며 말했다.
“운명의 숲을 찾고 있습니다. 그곳에 가야만 합니다.”
노파는 리안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희미하게 웃었다.
“운명의 숲은 아무나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길을 찾으려면 올바른 질문을 던져야 하지.”
리안은 당황했지만, 이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운명의 숲으로 가는 길을 알 수 있습니까?”
노파는 장작 더미에서 작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리안에게 건넸다.
병 속에는 희미한 붉은 실 한 조각이 떠다니고 있었다.
“이 실을 따라가거라. 너의 운명이 널 인도할 것이다.”
리안은 신비로운 기운이 감도는 유리병을 손에 쥐었다.
손끝으로 느껴지는 미묘한 떨림이 그에게 이것이 단순한 조각이 아니라,
더 큰 의미를 가진 것임을 알려주고 있었다.
노파는 리안을 바라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여정을 떠나기 전에 배를 채우고 가는 것이 좋겠구나.
길은 멀고, 허기진 몸으로는 제대로 된 선택을 할 수 없지.”
그녀는 리안을 작은 오두막 안으로 안내했다.
오두막 안은 아늑하고 따뜻했다.
모닥불이 타오르며 벽난로 위에는 갓 구운 빵이 놓여 있었다.
공기 중에는 구수한 향기가 감돌았고,
리안은 그제야 자신이 꽤나 지쳐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 앉아라.”
노파는 따뜻한 차 한 잔과 갓 구운 빵을 리안에게 건넸다.
리안은 감사 인사를 하고 한 입 베어 물었다.
촉촉하고 부드러운 빵이 입안에서 퍼지며 따뜻한 기운이 온몸을 감쌌다.
차를 한 모금 마시니 마음속의 긴장도 조금씩 풀리는 듯했다.
“네가 찾는 것이 무엇인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노파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길을 떠나는 자는 언제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깨닫게 되지.”
리안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곱씹었다.
그는 단순히 실을 되찾기 위해 떠난 것이었지만, 어쩌면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게 될지도 몰랐다.
몇 날 며칠을 걸어 마침내 리안은 거대한 숲의 입구에 도착했다.
‘운명의 숲’이라 불리는 이곳은 마치 살아 숨 쉬는 것처럼 신비로운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안개가 자욱하게 깔려 있었고,
나무들은 마치 무언가를 속삭이는 듯 잔잔하게 흔들렸다.
발을 내디디자 땅이 부드럽게 그를 받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유리병 속의 실이 갑자기 미세하게 빛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치 리안을 인도하려는 듯 실이 흔들렸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겠군.”
리안은 깊은 숨을 들이마시고 숲 속으로 한 걸음 내디뎠다.
그의 붉은 실을 찾기 위한 여정은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