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안과 에르반은 조용히 숲속을 걸었다.
리안은 아직도 그를 완전히 신뢰하지 못했지만, 에르반은 태연한 표정으로 앞서 나아갔다.
숲은 여전히 몽환적이었다.
잎사귀에 걸린 빛들은 반짝이며 길을 안내하는 듯했고,
부드러운 바람이 두 사람의 머리카락을 흩날렸다.
“당신은 길을 잘 알고 계시는군요.”
리안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에르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 숲은 길을 허락한 자에게만 길을 보여줍니다.
당신은 그동안 타인의 실만 엮어주었지, 자신의 길을 걸어본 적이 없지 않습니까?”
리안은 그 말에 순간 멈춰 섰다.
에르반의 말은 마치 그의 삶을 꿰뚫어 보고 있는 듯했다.
그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당신은 저를 너무 잘 알고 있는 듯합니다.”
에르반은 한쪽 눈썹을 살짝 올리며 리안을 바라보았다.
“정말로 저를 처음 보는 것입니까?”
리안은 당황스러웠다. 이 질문은 그에게 처음이 아니었다.
에르반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마치 그를 알고 있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리안은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그와 얽힌 과거가 없었다.
“네, 처음입니다.”
리안은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에르반은 그저 조용히 미소 지을 뿐이었다.
여정을 거듭할수록 리안은 에르반이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리안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듯했다.
“예전에는 지금보다 훨씬 자신감이 넘쳤었는데요.”
에르반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리안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때 당신은 조금 더 거칠고, 감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이었지요.”
리안은 황당하다는 듯이 에르반을 바라보았다.
“당신은 마치 저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씀하시는군요.”
에르반은 살짝 웃으며 시선을 돌렸다.
“어쩌면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요.”
리안은 답답함을 느꼈다. 그는 왜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알고 있는 것일까?
혹시 과거에 정말 만난 적이 있는 걸까?
하지만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보아도 그런 기억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리안은 계속해서 에르반의 손목을 신경 쓰고 있었다.
그의 손목에도 붉은 실이 있었던 흔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끊어져 있었다.
‘설마…’
리안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확신할 수 없었다.
그는 결국 그 의문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합니까?”
리안이 물었다.
에르반은 멀리 나무들 사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숲을 빠져나가면, 운명의 실이 다시 엮이는 장소가 있습니다.
그곳에서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리안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걸었다.
서로를 경계하면서도, 동시에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순간들이었다.
저녁이 되자 두 사람은 작은 개울가 근처에 자리를 잡고 쉬었다.
리안은 모닥불을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
에르반은 조용히 개울물에 손을 담그고 있었다.
“이곳에서 쉬어가기로 하시겠습니까?”
리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에르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이곳이라면 안전할 것입니다.”
리안은 그를 바라보았다.
“저에게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시는 겁니까? 그저 운명 때문입니까?”
에르반은 잠시 생각하더니, 조용히 대답했다.
“당신이 찾고 있는 것은 붉은 실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진실 아닙니까?”
리안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리안은 여전히 그를 완전히 신뢰할 수 없었다.
“당신은… 대체 누구십니까?”
리안이 다시 한 번 물었다.
에르반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 답을 찾기 위해 함께 가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리안은 답을 하지 못했다.
불꽃이 타오르며 두 사람 사이의 공기는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리안은 깨닫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는 에르반을 정말로 알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