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은 동굴 앞에 섰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리안의 망토를 흔들었고,
에르반은 손을 뻗어 동굴 입구의 기묘한 문양을 가리켰다.
“여기가 붉은 실의 비밀이 잠들어 있는 곳입니다.”
리안은 두려움 반, 설렘 반의 마음으로 동굴을 바라보았다.
입구를 감싼 문양은 은은한 빛을 내뿜고 있었고,
그 빛은 마치 누군가를 초대하는 것처럼 부드럽게 일렁이고 있었다.
“이 안에 제 실이 있습니까?”
“그 실뿐만 아니라, 당신이 찾던 모든 답이 있을 겁니다.”
에르반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의 말은 확신에 차 있었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슬픔이 담겨 있었다.
리안은 더 묻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발을 내디뎠다.
동굴 안은 그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광활하고 어두웠다.
벽에서 흐르는 미묘한 빛은 그들에게 길을 안내했지만, 묘한 긴장감이 주위를 감쌌다.
동굴 깊숙이 들어갈수록 공기는 더 무거워졌다.
리안은 손목의 끊어진 붉은 실을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 순간, 주변의 온도가 갑자기 차가워지더니, 벽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조심하세요,”
에르반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연기는 점점 형체를 갖추더니, 거대한 괴물로 변했다.
괴물은 기괴한 눈빛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이건… 제 과거입니다.”
리안은 괴물을 알아보는 듯 멍하니 중얼거렸다.
괴물은 리안의 어린 시절, 그가 잃어버린 인연들과 마주했던 상처의 형상이었다.
“넌 다시는 실을 잇지 못할 거야.”
괴물은 거대한 목소리로 외쳤고, 리안의 귀에 그 말은 무겁게 내려앉았다.
“그만!”
리안은 떨리는 목소리로 외쳤다.
그러나 괴물은 리안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불안과
두려움을 파고들며 계속해서 그를 압박했다.
에르반은 리안 앞으로 나섰다.
“리안, 이건 단순한 환영이 아닙니다. 당신이 극복해야 할 진짜 과거입니다.”
리안은 주먹을 꽉 쥐었다.
“저 혼자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싸우게 두진 않을 겁니다.”
에르반의 단호한 목소리에 리안은 그를 돌아보았다.
에르반의 손목에도 붉은 실이 희미하게 보였고,
리안은 그 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괴물은 리안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에르반의 주변에도 어둠이 피어올랐다.
그의 앞에 나타난 괴물은 리안과는 다른 형태였다.
그것은 에르반의 고독과 죄책감을 형상화한 존재였다.
“당신은 항상 홀로 남을 것이다.”
괴물의 말에 에르반은 눈을 감았다.
하지만 그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아니라 그를 지켜야 합니다.”
에르반은 괴물을 향해 검을 겨누었다.
리안은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이 알지 못했던 에르반의 또 다른 면모를 느꼈다.
“에르반…”
리안은 그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갔다.
그러나 에르반은 손을 들어 리안을 막았다.
“리안, 지금은 당신의 싸움에 집중하세요.”
리안은 다시금 자신의 괴물을 마주했다.
그는 두려웠지만, 에르반의 단호한 목소리가 그의 마음을 다잡게 했다.
괴물은 점점 더 강해졌고, 두 사람은 각자의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리안은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를 설득했다.
“나의 실은 끊어졌지만, 내 운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는 떨리는 손으로 마법을 발휘하며 괴물에게 맞섰다.
에르반 역시 자신의 괴물을 향해 망설임 없이 공격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싸움을 이어가면서도,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걸고 있었다.
괴물이 에르반을 덮치려는 순간, 리안은 온 힘을 다해 마법을 사용해 괴물을 물리쳤다.
에르반은 쓰러지지 않고 다시 일어서며 리안의 괴물과 싸우는 데 가세했다.
“당신을 지킬 겁니다.”
에르반은 단호히 말했다.
리안은 그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지금은 그 감정을 깊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두 사람은 괴물과의 싸움 끝에 마침내 서로를 구했다.
그들은 지친 몸을 이끌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왜… 왜 목숨까지 걸어가며 저를 돕는 겁니까?”
리안의 떨리는 목소리에 에르반은 조용히 미소 지었다.
“그 답은 이미 알고 계실 겁니다.”
리안은 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에르반의 눈빛은 더 이상 숨기지 않는 진심을 담고 있었다.
그 순간, 동굴 안에 붉은 빛이 감돌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손목을 보자, 끊어졌던 실이 희미하게 빛나며 그들을 감쌌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마지막 일이 남았습니다.”
에르반의 말에 리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함께 동굴의 깊은 곳으로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