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현과의 만남이 거듭될수록 여주의 마음은 더욱 복잡해져 갔다.
그의 다정함에 끌리는 마음과,
밤마다 되풀이되는 악몽 속 남자에 대한 두려움이 끊임없이 그녀를 괴롭혔다.
이제 꿈은 단순히 슬픈 눈빛과 칼날의 형상만이 아니었다.
어렴풋하게나마 배경이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낡은 초가집의 마당, 앙상한 나뭇가지, 그리고 희미하게 보이는 태극 문양 조각.
“대체… 이 꿈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여주는 더 이상 이 악몽을 단순한 꿈으로 넘길 수 없었다.
마치 잃어버린 퍼즐 조각처럼,
꿈은 그녀에게 잊힌 과거의 단편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녀는 꿈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무언가 해야만 했다.
결국, 여주는 꿈의 의미를 찾기로 마음먹고, 관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녀의 발길이 향한 곳은 시립 도서관이었다.
도서관의 역사 자료 코너에서 여주는 일제강점기 시대의 생활상을 다룬 책들을 찾아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관련 서적들을 하나씩 펼쳐보았다.
책 속에는 당시의 암울했던 시대 상황과, 고통받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여주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가슴 한쪽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여주의 눈길을 사로잡는 한 권의 책을 발견했다.
‘항일의 불꽃, 꺼지지 않는 혼’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책 표지에는 태극기 아래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여주는 조심스럽게 책을 펼쳤다.
책 속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평범한 조선인들이 어떻게 독립을 염원하며 살아갔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었다.
검열을 피해 은유적으로 표현된 시대의 아픔과,
독립을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여주의 마음을 깊이 울렸다.
책에는 당시의 사진 자료들도 함께 실려 있었는데,
그중 한 장의 흑백 사진이 여주의 시선을 붙잡았다.
낡은 초가집 마당에서 찍은 여러 사람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었다.
낡고 허름한 옷차림을 한 그들의 얼굴에는 슬픔과 비통함,
그리고 굳은 의지가 함께 어려 있었다.
사진의 한쪽 귀퉁이에는 희미하게 태극 문양이 새겨진 천 조각이 걸려 있었다.
여주는 사진을 보는 순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가슴이 벅차올랐다.
꿈속에서 보았던 풍경과 너무나도 흡사했기 때문이다.
낡은 초가집,
어두운 밤, 그리고 태극 문양…
모든 것이 꿈속의 장면과 일치했다.
여주는 사진 속 사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러다 한 남자의 얼굴에서 시선이 멈췄다.
앳된 얼굴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비통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마치 모든 것을 잃은 사람의 눈빛처럼, 깊고 슬픈 눈빛은 여주의 가슴을 에는 듯 아프게 했다.
그 눈빛은… 꿈속에서 자신을 죽이던 남자의 눈빛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여주는 책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책에는 사진에 대한 짧은 설명이 적혀 있었다.
‘조국의 독립을 염원했던 이름 없는 사람들’이라는 문구가 여주의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없었지만, 여주는 직감했다.
꿈속 남자는 바로 이 사진 속 사람들 중 한 명이었고,
자신이 밤마다 꾸는 악몽은 바로 그 시대의 어느 비극적인 순간의 기억이라는 것을.
그리고 어쩌면… 그것은 자신의 전생의 기억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전생…?”
여주는 혼란에 휩싸였다.
그녀는 꿈이 단순한 악몽이 아닌, 전생의 기억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전생에 독립을 염원했던 평범한 조선인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그리고 꿈속 남자가 자신과 함께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주는 온 몸이 떨려왔다.
하지만, 왜 그녀는 그런 끔찍한 기억을 되풀이해서 꾸는 걸까?
그리고… 현생에서 만난 도현은… 대체 어떤 존재일까?
여주는 떨리는 손으로 책을 덮었다.
그녀의 마음속에는 혼란과 두려움, 그리고 알 수 없는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그녀는 이제 전생의 진실을 마주해야만 했다.
더욱 자세한 것을 알아봐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