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린은 잔잔해진 바다를 바라보았다.
파도는 이제 그녀에게 속삭이듯 부드러웠다.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지만,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는 아직도 풀리지 않은 감정이 가득 차 있었다.
에드리안은 이제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바다와의 연결, 자신의 존재, 그리고 그가 살던 세계. 하린은 그에게 미소를 지었지만, 그 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이제 어때요?”
그녀의 질문에 에드리안은 손을 들어 자신의 피부를 바라보았다.
더 이상 비늘이 반짝이지 않았다.
그의 눈은 여전히 깊고 푸른빛을 간직하고 있었지만,
그 안에 담긴 것은 더 이상 바다의 신비가 아니었다.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부드럽게 웃었다.
“처음으로 공기가 다르게 느껴져.”
그는 손을 들어 바닷바람을 느꼈다.
“이제 더 이상 물속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게… 이상해.”
하린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잡았다.
“하지만 당신은 이제 여기 있어요. 나와 함께.”
에드리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시선에는 확신과 불안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정말 괜찮을까?”
하린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함께라면, 뭐든지 괜찮아요.”
그러나 그 순간, 잔잔하던 바다에서 작은 물결이 일렁였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하린은 뒤를 돌아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바다는 쉽게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는 것을.
그날 밤, 하린은 연구소에서 에드리안과 함께 조용한 시간을 보냈다.
그는 인간의 몸에 적응하려 노력하고 있었다.
작은 것들조차도 낯설어 보였다.
컵을 쥐는 방법,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사는 게 익숙해질까?”
그의 말에 하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천천히 익숙해지면 돼요. 당신은 이제 인간이니까.”
그러나 그녀가 말한 순간, 묘한 불안감이 스쳐갔다.
정말 에드리안이 인간으로 살아가는 것이 그에게 옳은 선택이었을까?
이제까지 그는 바다에서 살아왔다. 그가 익숙했던 것은 드넓은 심해와 자유였다.
하린은 자신이 그를 묶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불안은 그날 밤 현실이 되었다.
한밤중, 에드리안은 창문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보름달이 비치는 바다를 가리켰다.
“하린.”
그녀는 졸린 눈을 비비며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그는 오랫동안 말을 하지 못하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바다가 나를 부르고 있어.”
그 순간, 그녀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뭐라고요?”
에드리안은 눈을 감았다.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이제 인간이야. 하지만… 뭔가가 나를 다시 바다로 부르고 있어.”
하린은 그를 붙잡았다. “당신은 이미 선택했어요. 당신은 이제 인간이에요.
바다로 돌아갈 수 없어요.”
그러나 에드리안은 혼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내 안의 일부는 여전히 바다를 원하고 있어.”
그녀는 그의 두 손을 꼭 잡았다.
“에드리안, 나를 봐요.”
그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린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사랑은 단순히 함께하는 것만이 아니에요.
당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야 해요. 난 당신이 행복하길 원해요.”
에드리안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깊은 고민과 사랑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조용히 결정을 내렸다.
“나는 여기 남을 거야.”
하린의 눈이 커졌다.
“정말요?”
그는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바다는 내 일부야. 하지만… 너도 내 일부가 됐어. 난 너와 함께할 거야.”
그 순간, 바닷바람이 조용히 불어왔다.
마치 마지막으로 그를 어루만지는 듯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을 끝으로, 바다는 다시 조용해졌다.
이제 그들은 함께 살아갈 것이다. 인어가 아닌, 인간으로서.
하린은 그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함께, 새로운 삶을 시작해요.”
그녀의 말에 에드리안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둘은 서로를 꼭 끌어안았다.
바다는 여전히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이제 그들을 놓아주었다.
그들의 사랑은 이제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