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이 기분 좋게 내리쬐는 늦여름 오후,
이진주는 캐리어를 질질 끌며 쉐어하우스의 문 앞에 서 있었다.
진주는 주인 아주머니가 보낸 문자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후 3시까지 도착하면 돼요.
진주 학생 방은 2층이고,
새로운 하우스 메이트도 있으니까 가서 인사 나누면 좋을 것 같아요.’
‘새로운 하우스 메이트?’
진주는 살짝 긴장했다.
사실 쉐어하우스 생활 자체가 처음이었다.
낯선 사람과 함께 산다는 것이 기대되면서도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혼자 살기에는 월세가 너무 비쌌고,
마침 이곳이 교통도 좋고 가격도 적당해서 선택한 것이었다.
무엇보다 주인 아주머니가 학생들에게 참 친절하다고
소문이 나 있어서 마음이 끌렸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진주는 부모님과 떨어져 처음으로
독립적인 생활을 시작했다.
기숙사 생활도 고려했지만, 좁고 답답한 환경이 싫어서
조금 더 자유로운 분위기의 쉐어하우스를 선택했다.
게다가 이곳은 학교와 가까워 등하교하기도 편리했다.
‘새로운 시작이야. 잘해보자, 이진주!’
진주는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문을 열었다.
“어서 와요~”
현관에서 주인 아주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짧게 자른 단발머리에 따뜻한 인상을 지닌 아주머니는
마치 오랜만에 만난 조카를 보는 것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진주 학생 맞죠? 아이고, 사진보다 훨씬 예쁘네. 어서 들어와요.”
“안녕하세요. 잘 부탁드립니다!”
진주는 밝게 인사하며 집 안으로 들어섰다.
쉐어하우스는 예상보다 더 아늑하고 깔끔했다.
거실에는 편안한 소파와 커다란 테이블이 놓여 있었고,
주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마치 가족이 함께 사는 듯한 따뜻한 분위기가 풍겼다.
“네, 방은 2층에 있어요.
그런데 진주 학생 들어오기 하루 전에 새 하우스 메이트가 먼저 왔어요.
동갑이라 더 잘 지낼 수 있을 거예요.”
“네! 어떤 분인가요?”
“음, 아주 잘생긴 학생이던데요~ 조용하고 깔끔한 편이에요. 공부도 잘할 것 같고.”
‘잘생겼다’는 말에 진주는 별생각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쉐어하우스니까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야 하는 법.
착하고 무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계단을 오르려던 순간, 거실에서 누군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진주는 걸음을 멈췄다.
‘얼굴이 낯이 익는..’
“너 혹시… 차동우?”
상대방도 순간 굳어진 표정으로 진주를 쳐다보았다.
“…이..진주?”
잔뜩 놀란 얼굴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익숙한 눈매,
차가운 듯한 표정,
그리고 그 목소리까지.
차동우.
진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이게 무슨 일이야?’
초등학교 시절 가장 친했던 친구.
하지만 중학교 때 어이없는 오해로 멀어졌고,
이후 단 한 번도 연락하지 않았던 사람.
그 차동우가 지금 자기 앞에,
그것도 같은 쉐어하우스에서, 같은 하우스 메이트로 서 있었다.
기분이 묘했다.
오랜만에 재회한 반가움보다는 예상치 못한 충격과 불편함이 먼저 밀려왔다.
“…하필이면 네가 여기 살 줄이야.”
진주가 한숨을 쉬며 말하자, 동우도 냉랭한 표정으로 팔짱을 꼈다.
“나도 마찬가지야.”
주인 아주머니는 두 사람의 반응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어? 둘이 아는 사이예요?”
진주는 애써 표정을 정리하며 어색하게 웃었다.
“아… 네. 어릴 때 같은 학교 다녔어요.”
“그냥 어릴 때 친했던… 친구예요.”
동우도 담담하게 대답했지만,
진주는 그 말이 영 불편하게 들렸다.
'친했다' 라니.
그 말 한마디가 오히려 지금 둘 사이의 거리감을 더 강조하는 듯했다.
주인 아주머니는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지만, 깊게 묻지는 않았다.
“그렇군요. 어릴 때 친구라면 더 좋겠네요! 이참에 다시 친해지면 되겠어요~”
'다시 친해지면 되겠네요.'
진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다시 친해질 수 있을까?
사실, 제대로 풀지도 못한 채 서서히 멀어진 게 바로 둘의 관계였다.
그때의 기억이 떠오르며 진주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진주와 동우는 서로를 자연스럽게 피했다.
아무리 같은 공간에서 살아도 말을 섞지 않으려 노력했다.
하지만 부딪힐 일이 없을 리가 없었다.
싸우지 않고 지낼 수 있을까? 아니면, 더 많이 부딪히게 될까?
이 이상한 동거가 어떻게 흘러갈지, 두 사람은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