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늦은 밤, 쉐어하우스는 고요했다.
하우스 메이트들은 모두 방으로 들어가 있었고,
거실에는 은은한 조명만이 켜져 있었다.
이진주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려다 그대로 멈춰 섰다.
‘아, 내 노트북…’
조금 전까지 거실 테이블에서 과제를 하다가
방으로 올라오면서 깜빡하고 두고 온 것이 떠올랐다.
한숨을 쉬며 계단을 내려가던 그때, 발끝이 계단 모서리에 걸렸다.
“앗…!”
몸이 앞으로 쏠리는 순간, 누군가가 가볍게 그녀를 붙잡았다.
“조심해!”
동우의 단단한 손이 허리를 감싸며 진주를 끌어당겼다.
순간, 그녀는 동우의 품 안에 안긴 채 멈춰 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예상보다 가까운 거리, 예상보다 강하게 느껴지는 체온, 그리고 숨결.
동우 역시 당황한 듯 가만히 있었다. 팔에 힘이 들어갔다 풀리길 반복했다.
‘뭐야… 나 지금, 왜 이러지?’
진주는 자신도 모르게 동우의 눈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조명 속에서 그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동우도 지금 자신처럼 이상한 감정을 느끼고 있는 걸까?
그러나 그 순간, 동우는 황급히 손을 놓으며 몸을 뗐다.
“괜찮아?”
진주는 얼어붙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동우는 쿨하게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다음부터 조심해. 밤에 계단 내려올 땐 잘 보고 다니라고.”
“…응.”
진주는 짧게 대답하고 도망치듯 노트북을 챙겨 방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고 나서야 가슴을 부여잡고 숨을 몰아쉬었다.
‘설마… 내가 차동우를?’
아니야. 말도 안 된다. 단순한 사고였을 뿐이야.
그런데도 심장은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
한편, 동우도 거실에 남아 한숨을 쉬었다.
팔을 올려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아니야, 그냥 반사 신경이었어.”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아까의 순간이 계속 맴돌았다.
다음 날 아침, 두 사람은 어색하게 마주쳤다.
주방에서 토스트를 만들던 진주는 동우가 거실을 지나가려는 걸 보고 무심한 척 인사를 건넸다.
“어제… 고마워.”
“응?”
“밤에, 계단에서.”
동우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별거 아니었어.”
그 말을 하면서도 동우는 자신이 거짓말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별거 아니라고 하기엔, 어젯밤의 감각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진주도 마찬가지였다.
평소처럼 행동하려 했지만, 괜히 접시를 떨어뜨릴 뻔하고, 컵을 잡는 손이 흔들렸다.
서로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더 의식하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점심시간, 진주는 친구들과 학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웃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 멀리 있는 동우가 눈에 들어왔다.
동우도 무심코 그녀를 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아, 이게 대체 뭐야…’
진주는 속으로 답답해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도 자꾸만 동우의 시선을 따라가게 됐다.
반면 동우는 교양 수업 강의실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도 문득 진주의 목소리가 들리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아니, 신경 쓰지 말자고.’
그러나 어느새 진주가 웃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관심이 가고 있었다.
하우스 메이트들도 미묘한 기류를 감지하기 시작했다.
“요즘 진주랑 동우 이상하지 않냐?”
거실에서 TV를 보던 한 하우스 메이트가 툭 던진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예전에는 맨날 티격태격하더니, 요즘은 이상하게 어색해.”
“아니면… 혹시 둘이 썸 타는 거 아냐?”
그 말에 모두가 흥미로운 표정을 지었다.
“어제도 보니까 진주가 동우 방 앞에서 한참 서 있더라.
들어가진 않고 그냥 가던데?”
“헐, 진짜? 뭐야, 뭐야, 뭔데 그래?”
한 명이 입을 가리며 흥미진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감정을 부정하고 있었다.
그 시각, 주방에서 각자 컵라면을 먹고 있던
진주와 동우는 또 한 번 어색하게 눈이 마주쳤다.
서로 모른 척하며 시선을 돌렸지만, 두 사람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감정, 대체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