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고사가 끝난 캠퍼스는 한층 가벼운 분위기였다.
학생들은 시험이 끝난 해방감을 만끽하며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거나,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진주와 동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으아…끝났다…”
진주는 강의실을 나서며 크게 기지개를 켰다.
시험을 준비하며 쌓였던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같이 나오던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이제 좀 살 것 같지?”
“완전.”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이제 좀 정신 차렸냐?”
돌아보니 동우였다.
그는 한 손으로 가방을 메고 평소처럼 무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어. 너도 이제 좀 살겠지?”
“뭐, 그렇지.”
둘은 별말 없이 함께 캠퍼스를 걸었다.
그동안 기말고사 준비로 정신없이 바빴던 두 사람은 제대로 마주 볼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지금, 더 이상 바쁘다는 핑계를 댈 수 없었다.
쉐어하우스에서는 오랜만에 바베큐 파티가 열렸다.
시험이 끝난 것을 축하하기 위해 주인 아주머니가 직접 고기를 사고,
하우스 메이트들도 하나둘씩 준비를 도왔다.
“진주 학생, 이거 좀 도와줄래요?”
주인 아주머니가 부엌에서 채소를 손질하며 진주를 불렀다.
진주는 얼른 앞으로 다가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하면 될까요?”
“이거 양파 좀 썰어주고, 고기도 양념 좀 해 줘요.”
그때, 동우도 자연스럽게 부엌으로 들어왔다.
“동우 학생도 도와줄 거죠?”
아주머니의 물음에 동우는 살짝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무심하게 대답했다.
“네. 그럼요.”
그렇게 두 사람은 나란히 서서 요리를 도왔다.
별 대화 없이 각자 맡은 일을 하면서도,
부엌 안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파티가 시작되고, 다 함께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 먹으며 웃고 떠들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한 하우스 메이트가 갑자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근데 너희 둘, 요즘 왜 이렇게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
순간, 모두의 시선이 진주와 동우에게 쏠렸다.
“뭐야, 혹시 우리 모르게 사귀는 거 아니야?”
“어? 그러고 보니 요즘 좀 수상하긴 해.”
“설마!”
모두의 장난스러운 반응에 진주는 당황하며 손을 내저었다.
“아, 아니야! 무슨 소리야!”
동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럴 리가.”
하지만 두 사람의 과한 반응이 오히려 사람들의 의심을 더 키운 듯했다.
하우스 메이트들은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계속해서 놀려댔다.
그때, 한 친구가 말을 꺼냈다.
“아 맞다, 내 남자동기가 너 봤는데 한 번 만나보고 싶대. 소개해 줄까?”
순간 진주의 얼굴이 붉어졌다.
“뭐? 갑자기?”
“괜찮은 사람이야. 착하고 성격도 좋고. 무엇보다 잘생김…”
“에이… 난 아직 연애 생각 없는데.”
“그래도 한 번 만나봐~”
하우스 메이트들은 장난스럽게 부추겼다.
진주는 어쩔 줄 몰라하며 손사래를 쳤지만,
그 순간 동우의 표정이 살짝 변하는 걸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는 애써 무표정을 유지했지만, 속에서는 이상한 감정이 피어올랐다.
‘소개…?’
파티가 끝날 때까지 동우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 저녁, 다 같이 정리를 하고 난 후,
주방에 남은 두 사람 사이에는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진주는 조용히 접시를 정리하며 말했다.
“오늘 진짜 오랜만에 재밌었네.”
“그렇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마침내 동우가 입을 열었다.
“너, 만나볼 거야?”
진주는 순간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응?”
“그 아까 김수진이 얘기한 그 동기?”
진주는 당황한 듯 동우를 바라보았다.
동우는 여전히 무심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아직 생각 안 해봤는데… 그냥 장난처럼 나온 이야기잖아.”
동우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시선을 피했다.
진주는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왜 저렇게 묻지?’
그날 밤, 진주는 침대에 누워서도 동우의 마지막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만날 거야?”
그건 단순한 호기심이었을까, 아니면 다른 감정이 섞여 있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