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차 준비됐습니다."
아침부터 집 안은 분주했다. 오늘은 윤서연이 재단 회의에 참석하는 첫날이었다. 재벌가 딸이라는 이유로 관심을 받는 게 싫었지만, 더 이상 도망칠 순 없었다.
"서연 씨."
현관 앞에 강도현이 서 있었다. 여전히 냉철한 표정, 깔끔한 블랙 슈트 차림이었다.
"오늘 일정은 제가 동행합니다. 이현우와 차지훈은 뒤따를 겁니다."
"제이크는요?"
"그는 다른 일을 처리 중입니다."
서연은 어깨를 으쓱했다. "보디가드가 이 정도로 철저해야 하나요?"
강도현은 미동도 없이 답했다.
"당연합니다. 저희가 보호하는 건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사람의 목숨이니까요."
그 말에 서연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단호한 말투가 마음속 어딘가를 울렸다.
차 안, 서연은 조용히 창밖을 바라봤다. 강도현은 옆자리에서 노트북을 켜고 무언가를 확인하고 있었다.
서연이 궁금한 듯 물었다.
"뭘 그렇게 열심히 보세요?"
"이동 경로와 주변 위험 요소를 체크하고 있습니다."
"그냥 회의 가는 길인데도요?"
강도현은 고개를 들어 서연을 똑바로 바라봤다.
"이번 협박 사건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마세요. 범인은 아직 잡히지 않았습니다."
서연은 무언가 말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그때, 운전석에 앉아 있던 이현우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서연 씨,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제가 있는데 무슨 일이 나겠어요?"
그의 유쾌한 태도에 서연도 피식 웃었다.
"현우 씨는 항상 이렇게 분위기 메이커세요?"
"그럼요. 딱딱한 분위기는 제 취향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때였다.
이현우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
"차가 우리를 따라오고 있어요."
강도현이 즉각 상황을 파악했다.
"몇 대냐?"
"한 대. 하지만 움직임이 수상합니다. 우리 경로를 정확히 따라오고 있어요."
강도현은 핸드폰을 들어 차지훈에게 연락했다.
"지훈, 위치 확인해."
잠시 후 차지훈의 목소리가 들렸다.
"검은 세단. 번호판은 가짜야. 이미 추적 중이다."
서연은 심장이 쿵쾅거렸다.
"설마… 또?"
강도현이 그녀를 진정시키려 손을 내밀었다.
"서연 씨, 괜찮습니다. 우리가 있습니다."
추격전이 시작됐다.
이현우가 거칠게 핸들을 꺾었다.
"준비하세요. 방해를 좀 해줘야겠네요!"
서연은 손잡이를 꽉 잡았다. 뒤따르던 검은 차가 속도를 내며 다가왔다.
"도현 씨!"
서연이 외치자, 강도현이 침착하게 대답했다.
"괜찮습니다. 지훈이 뒤처리를 할 겁니다."
그 순간, 제이크의 목소리가 무전으로 들려왔다.
"서연을 건드리는 건 좋은 생각이 아닐 텐데."
제이크는 이미 그 검은 차가 멈춰설 수밖에 없는 함정을 준비해 놓고 있었다.
몇 분 후, 상황은 정리됐다.
검은 차는 더 이상 추적하지 않았고, 차지훈이 경찰에 연락해 뒤처리를 맡았다.
이현우가 뒤돌아보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서연 씨, 첫날부터 스릴 넘치죠? 원래 이런 일 잘 없는데 말이에요."
서연은 말없이 숨을 고르며 강도현을 바라봤다.
그는 여전히 침착했다.
하지만 서연은 알 수 있었다.
그가 손을 꽉 쥐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의 눈빛이 흔들리고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