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님, 그러니까 제 말은 억울하다는 거죠!
이건 명백한 불공정한 싸움이에요!"
이서윤은 변호사 사무실에서 팔짱을 끼고 불끈 주먹을 쥔 채 말했다.
그러나 맞은편에 앉은 변호사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안경을 고쳐 쓰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서윤 씨, 상대가 KJ 그룹입니다. 승산이 없어요.
소송을 걸어봤자 법정까지 가기도 힘들 거고,
설령 가더라도 승리할 확률은 0%에 가깝습니다."
서윤의 얼굴이 굳어졌다.
"하지만 저는 잘못한 게 없어요!
사고가 난 것도 제 잘못이 아니라 오토바이를 피하려다 그런 거라고요!"
"그래도 현실적으로 생각하셔야죠.
KJ 그룹이 변호사 몇 명을 동원할지 아세요?
소송 비용도 어마어마할 텐데, 감당하실 수 있겠어요?
일단 저는 감당 못해요"
변호사의 말에 서윤은 허탈하게 주저앉았다.
그녀의 통장에는 12,000원밖에 없었다.
변호사 선임 비용은 커녕, 소송을 걸어봤자 재판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데. 저도 나름의 정의감이 있거든요!
…라고 말해봤자 돈이 없으니 정의도 힘을 못 쓰네."
변호사는 기가 막힌다는 듯 웃었다.
"정의도 자본이 있어야 유지됩니다."
‘증말… 변호사 맞아..?’
한편, KJ 그룹 본사.
"너, 결혼할 생각은 없냐?"
강재윤은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맞은편에 앉아 있는 강 회장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네 나이가 벌써 서른둘이다.
후계자로서 이미지 관리도 필요하고, 기업 운영도 안정적이려면 결혼하는 게 좋다."
재윤은 무표정하게 커피를 마셨다.
"저는 결혼에 관심 없습니다."
"그러면 내가 골라줄 수도 있어."
"...무슨 말씀이세요?"
강 회장은 서류 한 장을 건네며 말했다.
"이미지 쇄신을 위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집안과 혼담을 추진할 계획이다.
네가 마음에 안 든다면, 내 뜻대로 할 수밖에 없다."
재윤은 서류를 흘끗 보았다.
거기에는 재계 유력 가문의 딸들의 프로필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이건 너무 갑작스럽네요."
"갑작스럽지 않다. 이미 내부에서는 논의된 사항이다."
강재윤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버지와 맞서 싸우려면 방법이 필요하다.
며칠 후, 서윤의 카페 앞.
"뭐, 뭐라고요?"
이서윤은 눈앞에 서 있는 강재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의 표정은 한결같이 차분했다.
"나랑 계약 연애를 하지."
"하하, 농담이시죠? 갑자기 웬 계약? 혹시 내 카페 쿠폰 10장이라도 받으러 오신 건가요?"
"진지합니다."
서윤은 어이없는 듯 입을 벌렸다.
"갑자기 왜요? 혹시… 외롭나요? 제가 같이 게임이라도 해 드릴까요?"
"너한테도 이득이 되는 제안이야.
소송을 취하하면 내가 네 피해 보상을 해 주겠다.
그리고 넌 내 연인으로서 내 곁에 있으면 돼."
"네? 저한테 이득이요?
사장님, 설마 커피 무료 쿠폰 같은 거 주시는 건 아니죠?"
"생각해 봐. 언론에서는 이미 우리 관계를 주목하고 있어.
어차피 시선이 집중된 상태라면 이걸 이용하는 게 낫지 않겠어?"
서윤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말 나온 김에, 사장님은 주식으로 돈을 그렇게 많이 버신다면서요.
제가 주식 조언 한 번 듣는 것도 포함해 주시면 고민해볼게요."
"네가 승산 없는 싸움을 이어가느라 힘들어하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서윤은 고개를 저었다.
"전 돈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에요. 정의를 위해서라도 싸우고 싶어요!
…하지만 정의는 내 통장 잔고를 고려해 주지 않지."
재윤은 어이없다는 듯이 웃었다.
"그렇다면 계약 연애가 너한테도 도움이 되겠네.
네가 이 싸움을 이길 확률은 0%지만,
나와 함께하면 넌 KJ 그룹의 ‘여자친구’로서 안전해질 거야."
서윤은 재윤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이 남자는 진심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었다.
"당신은 왜 계약 연애가 필요한데요?
혹시…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든가?"
재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회사 이미지 때문이다."
"...결혼 압박?"
"그렇지."
서윤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와, 정말 대단하시네요. 저랑 계약 연애하면 결혼 압박이 사라지나요?
설마 아버지께서 ‘네가 선택한 사람이면 어쩔 수 없구나’ 하고 넘어가시진 않겠죠?"
"네 선택이야. 계약 연애를 할 건지, 소송을 계속할 건지."
서윤은 깊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이게 최선일지도 몰라...
그런데 저 사람은 진짜 진지한 거야?
‘바보냐, 이서윤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