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은 숨을 삼키며 눈앞의 또 다른 자신을 바라보았다. 폐허가 된 세계, 균열이 깊어지는 공간, 그리고 그녀 앞에 서 있는 또 다른 자아. 모든 것이 혼란스럽고 두려웠지만, 피할 수 없는 순간임을 직감했다.
"내가 선택해야 한다고 했지?"
서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또 다른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하지만 선택이 쉬울 거라 생각하지는 마. 너는 아직 모든 기억을 되찾지 못했어. 그걸 마주할 준비가 되었어?"
서연은 긴장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나를 둘러싼 이 세계의 진실을 알고 싶어. 그게 얼마나 아프든, 이제는 외면하지 않겠어."
그 말을 하자마자, 주변의 공간이 흔들리며 갑자기 서연의 눈앞이 흐려졌다. 정신이 아득해지며 그녀는 자신이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녀는 과거의 한 장면 속에 서 있었다.
과거.
어린 윤서연은 작은 방 안에서 울고 있었다. 그녀의 앞에는 낡은 문이 서 있었고, 문 반대편에서는 누군가 그녀를 애타게 부르고 있었다.
"서연아, 문을 열면 안 돼!"
익숙한 목소리였다. 너무도 익숙했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반대편에서는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아, 문을 열어. 괜찮아. 네가 날 구해줘야 해."
그 목소리는 그녀 자신의 목소리였다. 너무도 친숙한 목소리.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절박함과 슬픔이 뒤섞여 있었다.
어린 서연은 떨리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그리고 깊은 혼란 속에서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문이 천천히 열리자, 그녀의 시야에 낯선 공간이 펼쳐졌다. 그곳은 어둡고 습한 기운이 감도는 이질적인 세계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녀와 닮은 또 다른 존재가 서 있었다.
"고마워, 서연아."
그 존재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덕분에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나 그 순간 어린 서연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문 너머에서 어둠이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자신이 있던 공간이 서서히 흔들리며 갈라졌다.
현재.
서연은 정신을 차리며 무릎을 꿇었다. 숨을 헐떡이며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을 닦았다. 그녀는 방금 자신이 본 장면을 되새겼다.
"내가… 그때… 문을 열었던 거야?"
또 다른 서연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맞아. 네가 문을 열었고, 그 순간 두 세계는 나뉘었어. 네가 두려워했던 그 선택이 현실이 되었고, 이제 다시 결정을 내려야 해."
서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가 과거에 내렸던 선택이 이 모든 것의 원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그녀가 다시 선택해야 한다.
그녀는 손을 들어 자신과 마주한 또 다른 자아를 가리켰다.
"네가 나의 또 다른 모습이라면, 너도 나처럼 고통받고 있는 거야?"
또 다른 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서로의 결과물이야. 네가 선택을 바꾸면, 나도 자유로워질 수 있어. 하지만 네가 다시 문을 열어야 해."
그 순간, 균열이 더욱 심하게 요동쳤다.
하늘이 찢어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공간이 일그러졌다.
폐허 속의 건물들은 흔들리며 무너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럼, 네가 선택을 되돌릴 준비는 되었어?"
또 다른 서연이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서연은 떨리는 손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선택이 두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었다.
그녀는 과거의 문과 마주했다.
문 너머에서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한 번,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이번에는 도망치지 않겠다고 다짐한 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문고리에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