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연은 손을 뻗어 문고리를 움켜잡았다. 차갑고 단단한 감촉이 손끝에 전해졌다.
그녀는 한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굳은 결심으로 문을 밀어 열었다.
그 순간, 강렬한 빛이 그녀를 감싸며 눈앞의 모든 것이 일그러졌다.
폐허가 된 세계가 뒤흔들렸고, 마치 세상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이 귓가를 때렸다.
서연은 눈을 감았다가 다시 떴다. 그리고 그녀가 마주한 것은 예상치 못한 풍경이었다.
과거의 방.
그녀는 어린 시절의 자신이 서 있던 작은 방 한가운데에 있었다.
창밖으로는 따스한 햇살이 비치고 있었고,
방 안은 낡았지만 익숙한 가구들로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고요했다.
서연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연아, 여긴 네가 만들어낸 세계야."
그녀는 깜짝 놀라 소리가 난 방향을 향해 몸을 돌렸다.
거기에는 여전히 그녀와 똑같이 생긴 또 다른 서연이 서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달랐다.
이제는 냉소적인 표정도, 차가운 눈빛도 없었다.
오히려 슬픔과 후회가 서려 있는 눈빛이었다.
"이곳이… 내가 만들어낸 세계라고?"
서연은 조용히 물었다.
"그래. 네가 두려워했던 모든 선택, 외면했던 진실들이 만들어낸 공간이지."
또 다른 서연은 천천히 걸어왔다.
"하지만 이제 네가 결정을 내려야 해. 이곳에 머물 것인지,
아니면 진실을 마주하고 현실로 돌아갈 것인지."
서연은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그녀는 자신의 선택이 이 모든 일의 원인이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녀는 방 한가운데 놓인 작은 테이블을 발견했다.
그 위에는 두 개의 열쇠가 놓여 있었다. 하나는 오래되고 낡은 열쇠,
또 하나는 반짝이는 은빛 열쇠였다.
"이건 뭘 의미하는 거야?"
서연은 열쇠를 바라보며 물었다.
"낡은 열쇠는 이곳에 머물러 과거를 반복하는 길.
반짝이는 열쇠는 진실을 받아들이고 현실로 돌아가는 길."
또 다른 서연은 미소를 지었다.
"선택은 네 몫이야."
서연은 한참 동안 열쇠를 바라보았다. 두 개의 선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하나는 익숙한 고통 속에서 안전하게 머무르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그녀는 손을 뻗어 반짝이는 열쇠를 집었다.
현실.
서연은 눈을 떴다. 숨을 크게 몰아쉬며 몸을 일으켰다. 그녀는 여전히 자신의 방에 있었다.
어두운 방 안, 익숙한 가구들, 그리고 문 너머에서 들려오는 평범한 일상의 소리들.
모든 것이 원래대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것을.
그녀는 더 이상 과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녀는 진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서연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스쳤지만, 그것마저도 그녀에게는 새로운 시작처럼 느껴졌다.
"이제, 진짜로 앞으로 나아갈 시간이야."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