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하영은 거실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이제야 조금 평온해진 일상이 찾아온 듯했다. 하지만, 그 평온은 오래가지 않았다.
딩동.
"이 시간에 또 누구야?"
귀찮다는 듯 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하이."
현준이었다.
"…뭐예요, 또 요리 망쳤어요?"
"아뇨, 오늘은 배달 시켰어요."
"잘했네요. 그럼 왜 온 거죠?"
"그냥 심심해서."
"…뭐요?"
하영은 어이가 없다는 듯 그를 바라봤다.
"아니, 나는 연예인이라 바쁠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시간이 많아요?"
"요즘 스케줄이 좀 한가해서요."
"그래도 그렇지, 심심하다고 이웃집을 찾아오는 건 좀 이상한데요?"
현준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냥 친한 이웃사촌끼리 얼굴 좀 보고 싶어서 왔죠."
"됐고요, 얼른 가세요."
하영은 문을 닫으려 했지만, 현준이 문 사이로 발을 밀어 넣었다.
"아, 진짜. 잠깐만."
"뭘 또요?"
"같이 맥주라도 한잔하죠."
"…네?"
"아까 배달하면서 맥주도 같이 시켰거든요. 혼자 마시기 심심해서."
하영은 피곤한 듯 이마를 짚었다.
"아, 진짜. 연예인이면 조심 좀 해요. 이렇게 아무 집에 막 들어오면 안 되는 거 몰라요?"
"아무 집이 아니라, 이웃사촌 집이잖아요."
"…그 단어 좀 그만 써요."
"어쨌든, 같이 마실 거예요, 말 거예요?"
하영은 한숨을 쉬며 그를 노려봤다.
"…딱 한 캔만요."
30분 후.
거실 테이블에는 맥주 캔 두 개와 간단한 안주가 놓여 있었다.
하영은 맥주를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그래서, 진짜 왜 온 거예요? 요즘 무슨 고민 있어요?"
현준은 맥주 캔을 돌리며 말했다.
"그냥… 요즘 신경 쓰이는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요?"
"…있잖아요, 하영 씨는 누군가를 좋아한 적 있어요?"
"네?"
하영은 당황했다.
"갑자기 그게 무슨 질문이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하영은 생각에 잠겼다.
"뭐, 좋아한 적이야 있죠. 근데 보통 마음이 커지기 전에 정리했어요."
"왜요?"
"좋아하면 귀찮아지잖아요."
현준이 피식 웃었다.
"하영 씨답네요."
"근데 왜 그걸 물어요? 혹시 누군가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생겼어요?"
현준은 조용히 맥주를 마시며 눈을 피했다.
"…그냥, 그런가 싶어서요."
"뭐야, 누군데요? 설마 연예인이에요?"
"…아니, 연예인은 아니에요."
"그럼 누구예요?"
현준은 대답하지 않고 맥주를 한 모금 더 마셨다.
하영은 장난스럽게 말했다.
"뭐야~ 갑자기 분위기 심각하잖아요."
"…그냥, 좀 복잡해요."
"복잡한 감정은 보통 좋아하는 감정이에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그게 무슨 애매한 대답이에요?"
현준은 조용히 그녀를 바라봤다.
"하영 씨는 저한테 신경 안 쓴다고 했었죠?"
"네, 당연하죠. 저는 연예인한테 관심 없어요."
"그래요?"
"네!"
하영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현준의 표정이 묘하게 보였다.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짓더니, 가볍게 말했다.
"알겠어요. 앞으로도 계속 신경 쓰지 마세요."
하영은 순간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