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한숨을 푹 쉬며 주방에 앉아 컵라면을 휘저었다.
“이게 다 뭐야…”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기자들, 팬들, 심지어 동네 주민들까지 그녀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면 정말 미쳐버릴 것 같아…’
그녀는 휴대폰을 열어 인터넷 기사를 확인했다.
[유현준, 미스터리한 여성과의 관계에 대해 침묵 유지]
[이웃 여성, 연인설 부인했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
"하… 이게 도대체 얼마나 가야 끝날까?"
그녀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라면을 먹으려는 순간—
삐—익!
거실 천장에 달린 화재 경보기가 울려 퍼졌다.
"헉, 뭐야!"
하영은 깜짝 놀라 라면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연기가 거실 안으로 퍼지고 있었다.
"불… 불이야!?"
하지만 금세 연기의 출처가 옆집에서 나는 것임을 깨달았다.
옆집, 즉 유현준의 집.
"저 사람 뭐 하는 거야!"
하영은 급히 슬리퍼를 신고 옆집으로 뛰어갔다. 초인종을 여러 번 눌러도 반응이 없자 결국 문을 두드렸다.
"유현준 씨! 문 열어요! 불 났어요!"
잠시 후, 문이 덜컥 열리며 연기가 밖으로 퍼져 나왔다. 그리고 그 안에는 당황한 표정의 현준이 서 있었다.
"아, 죄송해요. 큰일 났네."
하영은 그의 집 안을 들여다보았다. 팬을 돌리고 창문을 열었지만, 주방 쪽은 이미 난장판이었다.
"이게 다 뭐예요? 설마 진짜 불 낸 거예요?"
"아니요… 그냥 요리 좀 해보려고 했는데…"
"요리요?"
하영은 부엌으로 들어가 냄비를 살펴봤다. 바닥이 새까맣게 탄 프라이팬 위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이거… 원래 뭔 음식이었어요?"
"계란말이요…"
"계란말이…?"
하영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계란말이를 만들다가 집을 태울 뻔했다고요?"
현준은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였다.
"제가 요리를 잘 못 해서요. 매니저가 해주거나 배달만 시켜 먹었거든요. 직접 해보려 했는데 이 사단이 났네요."
"진짜 큰일 날 뻔했어요. 그냥 배달 시켜 드세요."
"근데 계속 배달만 먹으면 질리잖아요."
"그래서 불을 내겠다고요?"
하영은 기가 막혀 고개를 저었다.
"제가 도와줄 테니까, 다음부턴 불 사용 조심하세요."
"네?"
"아무리 요리를 못해도 이건 너무하잖아요. 기초부터 배우세요."
하영은 벌써부터 피곤함을 느끼며 부엌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현준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그럼… 요리 선생님이 되어 주시는 건가요?"
"됐고요, 그냥 최소한 집 안 태우지는 않게 하려고요."
하영은 짜증 난 듯 말했지만, 현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다음 날, 하영은 약속대로 현준에게 요리를 가르쳐주기로 했다.
"자, 오늘은 라면부터 시작해 볼까요?"
"라면이요?"
"네, 지금 상태로는 라면도 위험하니까요. 물 조절부터 연습해요."
하영은 냄비에 물을 붓는 법부터 차근차근 설명했다.
"이제 스프를 넣고…"
"이거 그냥 다 때려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요?"
"아니요! 순서가 있어요. 스프부터 넣으면 안 돼요."
"아, 그렇구나…"
현준은 의외로 순순히 따라 하며 진지하게 배웠다. 그 모습이 조금 귀엽기도 했다.
"라면 하나 끓이는데 이렇게 어렵다니."
"이제 알겠죠?"
하영은 팔짱을 끼며 그를 바라봤다.
"근데 왜 이렇게까지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아까도 말했지만, 그냥 이웃으로서 최소한 불은 내지 않게 하려고요."
현준은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그럼 우리, 이제 친구인가요?"
하영은 순간 당황했다.
"친구?"
"네. 원래 이웃도 서로 도와가며 사는 거잖아요?"
하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사실 그녀는 처음부터 현준과 가까워질 생각이 없었다. 연예인이든 아니든, 그녀에게는 조용한 생활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새 그는 자신의 일상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고 있었다.
하영은 결국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뭐…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최소한의 이웃사촌?"
"이웃사촌이라…"
현준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이웃사촌."
그렇게 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웃사촌’ 관계가 얼마나 더 깊어질지는…
아직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