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소민과 준호의 의견 충돌은 더욱 심해졌다.
매주 진행되는 기획 회의마다 두 사람은 날을 세웠고,
주변 스태프들은 숨죽이며 지켜볼 정도였다.
“이 장면에서는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지가 중요합니다.”
소민이 설명했다.
“하지만 스타일이 그 감정을 더욱 극대화시켜야 하죠.”
준호가 반박했다.
“그렇다고 감각적인 요소만 강조하면 핵심이 흐려질 수 있어요.”
“감각 없이 전달되는 감정은 결국 공허해집니다.”
서로의 의견 차이는 날이 갈수록 더 깊어졌다.
회의 시간마다 팽팽한 신경전이 이어졌고, 그럴 때마다 제작진은 난감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니까, 강준호 씨는 감정만으로 연애가 된다고 보시는 거죠?”
소민이 팔짱을 끼며 물었다.
“그렇다기보단, 감정이 핵심 요소라고 생각하는 거죠.”
준호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그런데 감정만 앞세우다 보면 연애가 쉽게 무너질 수도 있어요.
서로를 알아가고,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게 더 안정적인 관계를 만들죠.”
“그렇게 계산적인 접근이 정말 매력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준호의 말에 소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연애는 지속가능해야죠. 패션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유행을 따라가기만 하면 금방 질리지만, 클래식한 요소를 잘 유지하면 오랫동안 사랑받잖아요.”
잠시 준호가 말을 잇지 못했다.
패션을 연애에 비유하다니, 예상치 못한 반격이었다.
“좋아요. 그럼 이 프로젝트에서 보여주죠. 누가 더 설득력 있는 연애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그렇게 두 사람은 마치 경쟁하듯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매 장면마다 서로 다른 접근 방식을 제안했고, 제작진은 양쪽 의견을 조율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연애 스타일 테스트 장면을 연출하는 과정에서 심하게 부딪쳤다.
“이 장면에서는 상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천천히 접근하는 게 중요해요.”
소민이 말했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다가가는 게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남기죠.”
준호가 반대했다.
“너무 직설적이면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고 방어적으로 변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감정을 숨기다 보면, 오히려 진심이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의 논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촬영이 중단되었고, 제작진은 한숨을 쉬며 두 사람을 따로 불러 조정에 나섰다.
“두 분, 서로 조율할 필요가 있어요. 프로젝트를 망치고 싶지 않다면요.”
그날 이후, 소민과 준호는 불편한 침묵 속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결과물은 점점 더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었다.
서로를 견제하며 더 나은 아이디어를 끌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하루는 소민이 대본을 검토하던 중, 스탭들의 실수로 조명이 흔들리며 머리 위로 떨어질 뻔했다.
순간적으로 준호가 그녀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조심하세요.”
숨이 멎을 듯한 순간, 가까이 마주한 두 사람의 시선이 엉켰다.
소민은 당황한 듯 고개를 돌렸고, 준호도 곧바로 그녀를 놓아주었다.
“고마워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날 이후 두 사람의 분위기는 묘하게 변했다.
감정의 싹이 트기에는 아직 이르지만, 적어도 서로를 전보다 더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여전히, 둘 사이의 의견 대립은 끝날 줄 몰랐다.
그리고 그 갈등 속에서, 그들만의 새로운 감정이 조금씩 자리 잡고 있었다.
이후 진행된 몇 차례의 촬영에서 두 사람은 이전과는 조금 다른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여전히 논쟁이 끊이지 않았지만, 언쟁 속에서도 서로를 이해하려는 작은 변화가 보였다.
어느 날, 소민이 작성한 대본을 검토하던 준호가 조용히 물었다.
“이 장면, 감정적으로는 좋지만 좀 더 자연스럽게 만들 순 없을까요?”
예전 같았으면 즉각 반박했겠지만, 이번엔 소민도 진지하게 고민했다.
“어떤 방식이 좋을까요?”
준호는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미소를 지었다.
“좀 더 현실적인 대화 흐름으로 조정하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아이디어를 조금씩 반영하며 최적의 결과물을 만들어가고 있었다.
프로젝트가 중반부를 지나면서, 두 사람은 각자의 강점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소민의 분석력과 논리적인 접근 방식이 장면의 몰입도를 높였고,
준호의 감각적인 연출이 감정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이제야 좀 맞춰가는 것 같네요.”
소민이 조용히 말했다.
“그렇죠. 처음보단 훨씬 나아졌어요.”
서로를 향한 신뢰는 차츰 쌓여가고 있었다.
여전히 의견 충돌은 계속되었지만, 이전처럼 단순한 대립이 아니라
더 나은 결과를 향한 건설적인 논쟁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렇게, 소민과 준호는 차츰 서로의 차이를 받아들이며 프로젝트를 완성해 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