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우진의 세상은 늘 흐릿했다.
푸른 하늘, 초록빛 가득한 나무, 형형색색의 운동복을 입고 뛰노는 사람들.
사람들은 당연하게 이야기했다.
"오늘 하늘 진짜 파랗다!" "와, 저 벚꽃 핑크빛 좀 봐!"
그러나 우진에게 세상은 흐릿한 회색조의 변주일 뿐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랬다.
모든 색이 명확하게 보이지 않고, 희미한 채도로 번져 보였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서
자신이 보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불편한 것은 아니었다.
색을 보는 것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고,
우진에게 중요한 것은 물속에서 누구보다 빠르게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는 수영부의 에이스였고,
물속에 들어가면 세상의 색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물속에서는 모두가 같은 시야를 가지니까.
그곳에서는 속도만이 중요했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그는 수영장에서 훈련을 마친 후
젖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물 밖으로 나왔다.
머리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어쩌면 저것도 사람들에게는 무슨 아름다운 색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진에게는 투명한 물방울에 불과했다.
"선배, 오늘 기록 되게 좋았어요."
후배 한 명이 다가와 밝게 웃으며 말했다.
우진은 무덤덤하게 수건을 집어 들어 머리를 닦으며 짧게 대답했다.
"응."
사실 기록이 좋았는지 나빴는지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그랬다. 목표는 늘 기록 단축,
그리고 다음 경기에서의 승리였다. 그 외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체육관으로 가는 길이었다.
육상부와 수영부는 훈련장의 반대편을 사용하지만,
가끔씩 교차하는 일이 있었다.
체력 훈련이나 합동 워밍업 때문이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수영부는 웜업을 마치고 가벼운 조깅을 위해 트랙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우진의 시야에 처음 보는 사람이 들어왔다.
트랙을 따라 전속력으로 달리는 한 사람.
쾅, 쾅, 쾅...
스파이크가 트랙을 박차는 소리,
거침없는 속도감, 가벼운 몸놀림.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다른 육상부원들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짧은 머리에 다부진 몸, 작은 키에도 강한 추진력을 가진 자세.
그리고, 그 누구보다 자연스럽게 달리고 있었다.
우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그가 달리는 모습에서, 평소에는 느끼지 못했던 이상한 감각이 스며들었다.
그때였다.
달리던 신입생이 마지막 코너를 돌며 스텝이 흔들렸다.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고 앞으로 넘어지려는 찰나,
주변에 있던 육상부원들이 소리를 질렀다.
"야, 조심해!"
우진은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그 순간, 신입생은 그대로 넘어지지 않고 가까스로 균형을 잡았다.
그리고 가볍게 숨을 몰아쉬더니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넘어질 뻔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육상부원들이 박수를 치며 말했다.
"와, 강이준 진짜 빠르다!"
"저 정도로 달릴 수 있다니, 신입 맞아?"
우진은 그제야 그의 이름을 들었다.
강이준.
그 이름을 되새긴 순간, 다시 한 번 심장이 묘하게 요동쳤다.
자신이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가슴이 뛰는 감각이 너무나 생경했다.
마치 물속에 오래 있다가 갑자기 숨을 들이마셨을 때처럼,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었다.
그가 트랙을 지나갈 때마다 공기가 바뀌는 것 같았다.
주변의 회색빛이 흔들리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강이준이 마지막 주행을 마치고 우진과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이상하게도 우진은 처음으로 색을 느낀 듯한 착각에 빠졌다.
"선배, 왜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계세요?"
같은 수영부 동료가 장난스럽게 물었다. 우진은 살짝 고개를 저으며 시선을 거두었다.
"...아니야."
하지만 이상했다. 확실히 무언가가 달랐다.
심장의 박동이 여전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목이 살짝 건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