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들어 우진은 자신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꼈다.
트랙 위에서 달리는 이준을 볼 때마다,
수영장 옆에서 마주칠 때마다 그의 시선이 본능적으로 이준을 따라갔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감정이 점점 짙어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영부 연습이 끝난 늦은 저녁,
우진은 홀로 운동장 벤치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은 온통 이준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하늘을 올려다봤다.
달빛이 운동장을 은은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준만 보면 가슴이 이상하게 뛰어.’
그 감정의 정체를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이란 걸 알면서도 인정할 수 없는
무언가가 가슴을 가로막고 있었다.
이준과 마주칠 때마다 어쩐지 시선이 머뭇거리고, 괜히 피하게 되었다.
이준은 그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
평소처럼 다가갔을 때, 우진이 살짝 고개를 돌리는 순간을 몇 번이고 목격했다.
예전 같으면 장난스럽게 말을 걸면 언제나 무덤덤하게라도 반응하던 우진이,
이제는 살짝 피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어느 날, 이준은 일부러 우진의 옆자리에 앉았다.
훈련이 끝난 후의 운동장,
남아 있는 몇몇 운동부원들의 웅성거림이 멀리서 들려왔다.
"선배, 요즘 저 피하는 거 같아요."
우진은 움찔했다. 그가 그런 말을 할 줄 몰랐다.
이준의 목소리는 장난기 없는 진지한 톤이었다.
"아니야."
"그럼 저만 그런 기분이 드는 건가요?"
우진은 쉽게 답하지 못했다.
그는 그저 두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가만히 있었다.
가슴이 다시 요동쳤다.
가까이 다가오는 이준의 온기,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숨이 가빠졌다.
그날 밤, 우진은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
푸른빛이 사람들에게 주는 감정과 심리적 의미를 다시 검색하기 시작했다.
차분함, 평온함, 신뢰, 그리고... 설렘.
그러나 우진이 느끼는 푸른빛은 단순한 색의 감정이 아니었다.
그는 이준과 함께 있을 때만 그 푸른빛을 선명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리적으로 보이지 않아도, 그 감각은 너무나도 뚜렷했다.
그는 이 감정을 부정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그것은 분명히 ‘이준’이라는 존재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우진은 천천히 노트북을 덮었다.
창문 밖을 바라보며 깊은 숨을 내쉬었다.
운동장에서 이준을 처음 봤을 때의 감각,
수영장 물속에서 그를 건져 올렸을 때의 떨림,
마주칠 때마다 심장이 뛰던 순간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감정은 처음부터 존재해왔다는 것을.
그 이후로도 우진은 자꾸만 이준을 신경 쓰게 되었다.
식당에서 마주쳤을 때, 훈련 중 이준의 목소리가 들릴 때,
심지어 다른 부원들과 장난치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없는 감정이 그의 가슴속을 뒤흔들었다.
이준이 웃을 때, 이상하리만큼 그의 주위가 밝아지는 것만 같았다.
사람들의 대화 소리도, 시끌벅적한 운동장도 흐려지고 오직 이준만이 선명하게 보였다.
어느 날, 수영장 옆 벤치에서 쉬고 있던 우진은
이준이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는 순간적으로 피하고 싶었지만 이미 늦었다.
"선배, 왜 또 도망가요?"
우진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이준의 눈을 바라보았다.
푸른빛이 감도는 눈동자가 자신을 꿰뚫어보는 듯했다.
그 순간, 우진은 깨달았다.
이 감정이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날 밤, 우진은 도서관에서 ‘푸른색의 심리적 의미’에 대한 책을 찾아 읽었다.
그가 이준에게서 느끼는 감정이 정말 푸른색과 관련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책을 읽으며 그는 푸른색이 안정과 신뢰,
때로는 그리움과 깊은 감정을 의미한다고 적혀 있는 부분에서 손을 멈췄다.
‘내가 이준을 보면 느끼는 감정도 이런 걸까...?’
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하늘의 푸른 어둠 속에서도, 그는 이준의 모습만이 선명하게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