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기숙사 옥상은 조용했다.
멀리서 들려오는 희미한 차량 소리와
간간이 부는 바람이 밤공기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었다.
우진은 난간에 기대어 서 있었다.
손끝에 스치는 차가운 금속이 밤의 서늘함을 더욱 실감나게 했다.
이준이 그의 옆에 섰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조용히 다가온
이준은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선배, 오늘 하늘 진짜 맑아요."
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이준이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검푸른 하늘에 수놓인 별들이 어딘가 낯설었다.
그는 별을 특별히 신경 써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별보다 더 눈에 띄는 건 바로 옆에 선 이준이었다.
이준이 갑자기 고개를 돌려 우진을 빤히 바라보았다.
"선배, 나랑 있으면 왜 그렇게 불편해해요?"
우진의 손끝이 움찔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이준의 눈빛은 집요했다.
마치 대답을 듣기 전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는 듯한 강한 빛을 띠고 있었다.
"불편하지 않아."
"거짓말."
이준은 가볍게 웃었다.
"눈도 못 마주치면서."
우진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고개를 돌린 채, 별빛이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슴이 뛰었다. 이준이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선배, 혹시... 나 좋아하는 거 아니야?"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우진의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그는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준이 가볍게 그의 소매를 붙잡았다.
"도망가지 마요."
우진은 얼어붙은 듯 멈춰 섰다.
이준의 손길이 가볍게 소매를 잡고 있을 뿐인데도,
마치 온몸이 그에게 고정된 것처럼 느껴졌다.
가슴이, 너무 크게 뛰었다.
숨이 가빠졌다.
이준이 천천히 미소 지었다.
"봐요. 지금도 도망가려 하잖아."
우진은 침을 삼켰다.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어쩌면 도망가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준은 천천히 손을 놓았다. 그리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선배가 뭘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한텐 선배가 특별해요. 그건 확실해요."
우진은 그의 말을 곱씹었다.
특별하다.
이준에게 그는 특별한 존재였다.
가슴이 더 크게 뛰었다.
별빛이 스며든 밤,
우진은 자신의 감정을 마주했다.
그는 처음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있었다.
이후로도 옥상에서의 그 순간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우진은 이준과 함께했던 대화를 수없이 되새겼다.
'나한텐 선배가 특별해요.'
그 한 마디가 계속해서 그의 마음을 흔들었다.
우진은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다음 날, 우진은 이준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준이 더욱 선명해졌다. 복도에서 마주칠 때도,
운동장에서 연습할 때도 그의 존재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우진은 자꾸만 자신도 모르게 이준을 찾고 있었다.
그날 저녁, 우진은 수영장으로 향했다.
수면 위에 반사된 빛이 잔잔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그는 조용히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물속에서 들려오는 고요한 소음이 그를 감쌌다.
마치 이준을 향한 감정을 지우려는 듯 그는 계속해서 수영했다.
하지만 물 밖으로 나오는 순간, 다시금 현실이 밀려왔다.
이준이 그곳에 서 있었다.
"선배, 혼자 뭐해요?"
우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준은 그를 향해 천천히 걸어왔다.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우진은 그 순간 깨달았다.
이준이 곁에 있으면, 그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다는 것을.
이준은 우진을 바라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선배, 오늘도 도망갈 거예요? 아니면 드디어 인정할 건가요?"
우진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준의 미소를 보는 순간, 그는 알았다.
자신의 심장이 뛰는 이유를.
그 순간, 물속에서 흘러나오는 조용한 파동처럼,
우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새로운 감정이 퍼져 나갔다.
피하려 해도, 부정하려 해도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감정.
그것은 분명한 떨림이었고, 한없이 투명한 푸른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