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은 이준을 피하려 했다.
감정을 깨달은 순간부터였다.
이준과 함께 있는 시간,
그의 목소리, 그의 손짓,
그의 미소. 모든 것이
너무 선명하게 가슴을 울렸다.
심장이 뛰는 것이 불안했다.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등을 돌릴수록, 세상이 더 흐려지는 것 같았다.
이준이 없는 공간은 점점 더 회색으로 변해갔다.
운동장에서도, 수영장에서도, 심지어 복도를 지나칠 때도
이준의 기척이 느껴지면 우진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그를 보면 다시 그 감정이 소용돌이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피하는 것이 정답일까?
스스로에게 되묻는 순간마다, 머릿속은 혼란스러워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회피였다.
일부러 훈련을 더 늦게 끝내고, 식사 시간도 일부러 어긋나게 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우진의 시선은 계속 이준을 따라갔다.
마주칠까 봐 피했는데, 오히려 보이지 않는 순간이 더 불안했다.
이준이 웃으며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이 보이면 가슴 한쪽이 저릿했다.
‘질투인가…’
신경 쓰지 않으려 할수록 더 의식되었다.
마치 숨을 참고 있다가 다시 크게 들이마실 때의 공기처럼,
피할수록 더 이준이 필요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준은 점점 더 답답해했다.
처음에는 장난처럼 다가왔지만, 우진이 계속 피하는 걸 깨닫자 표정이 굳어졌다.
어느 날, 체육관 뒤편에서 마주쳤다.
일부러 멀리 돌아가려던 우진을 이준이 막아섰다.
"선배, 내가 싫어요?"
이준의 목소리는 평소처럼 가볍지 않았다.
장난기가 사라진 눈빛.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우진을 움츠러들게 했다.
우진은 입을 열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솔직해질 수도 없었다.
이준은 한 걸음 다가왔다.
"왜 피해요? 저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봐요."
우진은 답하지 않았다. 그저 주먹을 꽉 쥔 채, 숨을 삼켰다.
가슴이 아팠다. 이준이 가까이 다가올수록,
그가 떠올랐던 모든 푸른빛들이 함께 밀려오는 기분이었다.
피하려 했는데, 오히려 더 선명해졌다.
이준이 애써 웃으며 말했다.
"아, 알겠다. 제가 선배 귀찮게 했나 보죠? 그냥, 그런 거였어요?"
아니야. 우진은 외치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결국, 우진은 이준을 밀어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그만해."
짧고 단호한 말이 나왔다.
그리고 뒤돌아섰다.
그 순간, 등 뒤에서 이준이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하지만 돌아볼 수 없었다.
돌아보면 다시 모든 것이 푸른빛으로 물들 것만 같았으니까.
그날 이후, 우진은 더욱 깊은 혼란 속에 빠졌다.
이준을 밀어낸 순간에도 가슴이 뛰었고,
다시 보지 않겠다고 다짐할수록 그의 얼굴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수영을 하면 괜찮을 줄 알았다.
물속에 있을 때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기록만을 좇던 예전처럼,
감정을 지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물속에서도, 눈을 감아도, 계속 이준의 목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선배, 내가 싫어요?’
그 단 한 마디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평소보다 몇 배는 더 강하게 몸을 몰아붙였지만,
물 밖으로 나오면 다시 현실이 밀려왔다.
숨을 헐떡이며 물가에 앉아 있으면,
마치 옆자리에 이준이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그는 없었다.
피하고, 밀어내고, 결국 남은 것은 텅 빈 공간뿐이었다.
운동장에서, 식당에서, 그리고 기숙사의 복도에서.
이준이 없는 자리들이 하나둘 늘어갈수록, 세상은 더욱 회색빛으로 바뀌어 갔다.
하지만 이상했다.
예전에는 늘 이렇게 살아왔는데, 이제는 이 회색이 낯설게만 느껴졌다.
무언가 중요한 걸 놓쳐버린 듯한 공허함이 계속해서 우진을 짓눌렀다.
심장이 뛰는 것이 두려워서 도망쳤는데,
이제는 그 뛰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기분이었다.
'내가 원했던 게, 정말 이거였나?'
우진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