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진은 체육관 구석에서 멍하니 서 있었다.
손에 쥔 물병은 미지근해졌고, 옆에서는 후배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들의 말이 또렷하게 귀에 박혔다.
"이준이 오늘 교내 육상 경기 중에 다쳤대."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우진은 숨도 쉬지 못한 채 그 말을 되새겼다.
이준이 다쳤다고?
확인할 필요도 없이 발이 먼저 움직였다.
트랙으로 가는 길이 이토록 길었던가.
운동장으로 향하는 길은 평소보다 더 멀게 느껴졌다.
귀에는 바람 소리만 울렸다.
가슴속은 조급함으로 가득 차 뛰기 직전처럼 두근거렸다.
트랙에 도착하자, 이미 응급처치를 받은 이준이 트랙에 앉아 있었다.
발목을 감싼 붕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괜찮은지 확인하기도 전에, 이상하게도 숨이 턱 막혔다.
우진은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생각보다 더 가까운 곳에서, 너무도 선명한 얼굴로 이준이 앉아 있었다.
"이준아... 괜찮아?"
이준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놀란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선배가 나 걱정해주는 거 처음 보네."
그 말을 듣는 순간, 우진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걱정이라니. 그게 맞을까? 가슴이 이토록 뛰는 건 단순한 걱정 때문이었을까?
이준은 장난스럽게 덧붙였다.
"혹시 울려고 하는 거 아니죠?"
우진은 당황한 듯 시선을 돌렸다. 이준은 여전히 웃고 있었지만,
평소의 장난스러운 미소와는 달랐다.
어딘가 조심스럽고, 어딘가 서운한 표정이었다.
"괜찮아. 별거 아니야."
이준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내일 훈련은 좀 쉬어야겠지만."
우진은 그런 이준을 가만히 바라봤다.
정말 괜찮은 걸까?
다친 발목보다도, 평소처럼 굴면서도 어딘가 낯설게 보이는 이준이 신경 쓰였다.
그 순간, 이준이 무게중심을 잃고 앞으로 살짝 기울었다.
우진은 반사적으로 몸을 숙여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조심해."
예상보다 가까운 거리. 이준의 체온이 피부를 통해 전해졌다.
순간적으로 긴장한 우진은 자연스럽게 그의 등을 감싸 부축했다.
이준이 작게 숨을 들이쉬었다.
"아, 미안해요... 갑자기 어지러워서."
"괜찮아?"
우진은 이준을 다시 살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이 살짝 창백해 보였다.
이준은 살짝 웃으며 우진의 어깨에 기대듯 힘을 뺐다.
"선배가 이렇게 가까이 있는 거, 좀 낯설다."
우진은 순간적으로 긴장했지만, 팔에 힘을 풀지 않았다.
이준의 체온이 느껴지는 게 이상하게도 싫지 않았다.
"괜찮으면 잠깐만 이렇게 있어."
이준은 눈을 깜빡이더니,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응."
그렇게 한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었다.
우진은 이준을 부축하는 것뿐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귓가로 스치는 바람이 평소보다도 선명하게 들렸다.
이준의 심장 소리조차 미세하게 느껴지는 듯했다.
'이게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감정일까.'
우진은 자신에게 묻고 싶었지만, 답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우진은 계속해서 이준을 신경 쓰게 되었다.
일부러 다가가지는 않았지만, 멀리서도 이준이 어떻게 지내는지 계속 확인하게 되었다.
이준은 변함없이 밝아 보였다.
다친 발목은 여전히 붕대를 감고 있었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다른 부원들과 웃고, 장난치고, 훈련이 끝나면 매번 트랙에 앉아 쉬었다.
하지만 우진은 알 수 있었다.
어쩐지 이준의 웃음이 예전과 다르게 느껴졌다.
멀리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 미세한 차이가 느껴졌다.
운동을 끝낸 어느 날, 우진은 또다시 멍하니 이준을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내가 이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가 있을까?
피하려 했던 감정이 다시 선명해졌다.
우진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이준이 없는 공간이 이제는 더 낯설게 느껴진다는 것이었다.
그날 저녁, 노을이 지는 운동장에서 우진은 처음으로 생각했다.
이준이 없는 곳에서, 나는 정말 괜찮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