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학교에 남아 훈련을 계속하기로 한 우진과 이준은
자연스럽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게 되었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었다.
공기는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고,
바람이 불어도 그 속엔 여름 특유의 뜨거운 기운이 묻어 있었다.
햇빛이 반사된 트랙 위로 이준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웠다.
그는 땀을 닦아내면서도 생기 넘치는 얼굴로 우진을 향해 웃었다.
“거봐요, 선배. 여름에 이렇게 더워도 달리면 좋아요.”
태양 아래에서 반짝이는 이준의 모습은 한층 더 눈부셨다.
피부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혔지만, 그마저도 맑고 투명해 보였다.
햇빛을 받으며 뛰는 그의 실루엣이 마치 한여름의 한 장면처럼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뜨겁게 달궈진 공기 속에서도, 그의 존재는 신기하게도 청량한 기운을 뿜어내는 듯했다.
우진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선선한 감각이 스며들 듯,
이준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더위조차도 조금은 덜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준이 활짝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이때 시원한 음료 한 캔을 마시면 크아-! 이때 살아있음을 느끼죠.”
우진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걸음을 멈췄다.
“그렇게 오버할 일인가.”
“선배는 감성이 부족하다니까.”
이준은 장난스럽게 웃으며 옆에 있던 아이스박스에서
스포츠 음료 한 캔을 꺼내 우진에게 건넸다.
“마셔요. 땀 많이 났잖아요.”
우진은 말없이 캔을 받아 들고 땄다.
톡, 하고 터지는 탄산 소리와 함께 시원한 기포가 입안으로 퍼졌다.
이준도 한 모금 마시고는 감탄하듯 말했다.
“캬~ 살 것 같다.”
우진은 고개를 살짝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
“그렇게 호들갑 떨 일은 아닌데.”
이준은 우진을 빤히 바라보더니 피식 웃었다.
“선배는 이런 날씨에도 잘만 버티네. 난 진짜 힘든데.”
“익숙해지면 괜찮아.”
“그 익숙해지는 데 몇 년 걸려?”
우진은 고민하듯 잠시 눈을 내리깔았다가 조용히 말했다.
“...몇 년은 걸릴 걸.”
이준은 살짝 입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그러니까 난 아직 멀었다는 거네.”
“아니.”
우진은 조용히 캔을 흔들었다.
안에서 기포가 부딪히는 소리가 미묘하게 들렸다.
“지금도 충분해.”
이준이 우진을 바라보았다.
장난기 어린 표정이 사라지고, 눈빛이 조금 더 진지해졌다.
그는 캔을 만지작거리며 조용히 물었다.
“선배.”
“응?”
“이제 느껴져?”
우진은 이준을 바라보았다. 이준은 가볍게 하늘을 가리켰다.
“하늘도, 물도. 푸른색이.”
우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색을 정확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이준과 함께 있을 때마다, 알 수 없는 감각이 가슴속 깊이 스며들었다.
그것이 푸른빛이라는 걸, 이제는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우진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응.”
이준은 잠시 우진을 바라보더니, 만족한 듯 웃으며 캔을 부딪쳤다.
“좋네.”
우진은 그런 이준을 바라보며, 다시 한 번 푸른빛을 느꼈다.
해질 무렵, 두 사람은 운동장 옆 벤치에 앉아 있었다.
기온이 조금씩 내려가면서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시원하게 느껴졌다.
바람에 나뭇잎이 살랑이며 낮의 열기를 서서히 식혀갔다.
이준이 팔을 뒤로 젖히며 길게 기지개를 켰다.
“이렇게 하루 종일 운동하고 나니까, 밤이 오면 몸이 가뿐해지는 기분이에요.”
우진은 가만히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이준은 한참 동안 하늘을 바라보다가 갑자기 우진을 바라봤다.
“근데 선배.”
“응?”
“우리 방학 끝날 때까지, 이렇게 계속 같이 훈련할 거죠?”
우진은 예상치 못한 질문에 잠시 멈칫했다.
이준의 눈빛은 장난스럽지만 어딘가 기대가 묻어 있었다.
우진은 조용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준은 환하게 웃으며 우진의 어깨를 툭 쳤다.
“좋아요. 그럼 내일도 아침부터 달릴 준비하세요!”
우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속으로는 이상하게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밤이 깊어갈수록, 가슴속에서 푸른빛이 더욱 선명해지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