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첫 갈등
서준은 현욱 교수의 연구실 문을 열며 안쪽을 조심스레 둘러봤다.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마음을 감추기 힘들었다. 평소 존경하던 교수와 함께 연구할 수 있게 된 건, 서준에게 있어 큰 도전이자 기회였다. 그는 오랫동안 품어왔던 학문적 갈망을 채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책상 뒤에 앉아있던 현욱이 서준을 천천히 바라보더니, 짧게 눈길을 주며 입을 열었다.
“서준인가.”
“네, 교수님.”
서준이 반듯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 태도에서 기쁜 마음이 묻어났지만, 현욱은 여전히 냉정했다.
“여기 들어왔다는 건 내 방식을 따르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일게. 그만큼의 각오가 되어 있다는 거지?”
서준은 단단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예, 교수님. 어떤 방식이든 배우고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현욱은 미묘하게 코웃음을 치며 그의 말을 잘라버렸다.
“따른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내 기준을 채우지 못한다면, 나는 너에게 더 이상 시간을 할애하지 않을 거야.”
서준의 미소가 희미하게 굳어졌다. 예상보다도 차가운 반응이었다. 그가 말하는 ‘기준’이 얼마나 높은지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서준은 두려움 대신 내면 깊은 곳에서 도전의식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기대에 부응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욱은 대답을 받아들였다는 듯, 말없이 그에게 첫 연구 과제를 내밀었다. 자료 더미와 복잡한 수식이 담긴 과제는 방대했고,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워 보였다.
예상치 못한 토론
며칠 뒤, 서준은 연구실로 현욱을 찾아왔다. 그가 정리한 노트를 손에 들고 있었고, 표정엔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현욱은 그를 보며 잠시 눈길을 주더니, 무심한 표정으로 물었다.
“과제는 잘 마쳤나?”
서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교수님. 다만, 이번 연구에 대해 몇 가지 의문점이 있어서 의견을 드리고 싶습니다.”
현욱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그는 예상 밖의 발언에 흥미를 느낀 듯했다.
“의문점이라? 말해봐.”
서준은 차분하게 자신의 의견을 정리했다. 노트에 적은 내용을 바탕으로, 그는 현욱의 기존 연구 방법에 대한 개선점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 말의 의미는 곧, 현욱의 방법론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교수님께서 사용하신 방법론은 상당히 효율적이지만, 일부 과정에서 오차 범위가 커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서는 새로운 변수를 도입해 보완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현욱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 그는 노트를 내려다보더니, 눈을 좁혀 서준을 쏘아보았다.
“네가… 내 연구 방식을 수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날카로운 목소리가 연구실 안에 울렸다. 서준은 잠시 말을 멈추고, 현욱의 눈을 마주 보았다. 그의 마음 한편에서는 긴장감이 피어올랐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그 말에 도전심이 자극됐다. 주저하지 않고 답했다.
“교수님의 연구 방식을 부정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더 나은 방향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현욱은 서준의 눈에서 꺾이지 않는 의지를 보았다. 하지만 그 의지는 자신이 여태껏 지도해 온 학생들과는 다른 결을 지니고 있었다. 무작정 가르침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그 한계를 넘어서려는 학생이라니.
“네가… 나를 뛰어넘겠다는 뜻인가?”
서준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그리고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예, 교수님. 저는 교수님을 뛰어넘고 싶습니다.”
순간 연구실이 정적에 휩싸였다. 현욱은 눈을 가늘게 뜨며 서준을 노려보았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묘한 감정이 요동쳤다. 불쾌해야 마땅할 서준의 당돌함이 오히려 그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긴장감 속에 피어나는 흥미
서준이 연구실을 떠난 뒤, 현욱은 묘한 감정에 사로잡혀 그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말하던 “교수를 뛰어넘겠다”라는 도전적인 말과, 그때의 눈빛이 머릿속에 아른거렸다. 그는 자신이 처음으로 만나게 된 이 학생이 어쩌면, 자신의 방식을 흔들어놓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느꼈다.
‘제자가 스승을 뛰어넘겠다고?’
서준의 태도가 결코 달갑지 않았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도전은 현욱에게도 학문적 자극을 주었다. 단순히 가르침을 받는 제자가 아니라, 자신과 대등하게 토론하고 논쟁하려는 존재라니… 현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감정을 곱씹었다.
‘이 아이, 정말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는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묘한 흥미를 느끼며 서준을 떠올렸다. 제자라는 경계를 넘고자 하는 서준의 태도에, 그는 싫어하면서도 끌려들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