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저녁, 서연은 퇴근 후 집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려던 순간, 낯익은 목소리가 그녀를 불러 세웠다.
“서연 씨.”
깜짝 놀라 고개를 든 서연은 비 오는 밤거리, 젖은 머리로 서 있는 강재현을 발견했다.
그의 모습은 평소의 완벽하고 차가운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초췌한 얼굴과 흔들리는 눈빛은 그가 평정심을 잃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왜 여기 계세요?”
서연은 당황스러움에 목소리가 떨렸다. 강재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요.”
그는 손에 들린 우산을 바닥에 내려놓으며 서연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복잡한 감정이 얽혀 있었다. “사실은...”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말을 이었다.
“2년 전부터 당신이 신경 쓰였어요.”
서연은 그의 말에 놀라 눈을 크게 떴다.
“2년? 그 오랜 시간 동안요?”
“네, 그렇습니다.”
강재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런데도 말하지 못했어요.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요.”
“그렇다면 왜... 왜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하신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흔들렸지만, 속에 담긴 분노와 혼란은 숨길 수 없었다.
강재현은 머리를 헝클며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겁이 났어요. 내가 당신을 붙잡을 자격이 있는지조차 의문이었으니까.”
“그런 핑계가 어딨어요. 사람은 말하지 않으면 모르는 거예요.”
서연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여기서 그만두려는 것도 그동안 쌓인 오해 때문이라는 걸 모르셨나요?”
“알아요. 그래서 더 후회돼요.”
강재현은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 떠나버리기 전에 진심이라도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서연은 그의 말이 진심임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 의심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진심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또 다른 의도가 있을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이 무슨 소용이에요?”
서연은 차갑게 말했다.
제 선택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세요?”
“바뀌지 않더라도, 난 알아야겠어요.”
강재현은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은 단단했다.
“당신은 내가 가만히 있기를 바랐나요?”
“그게...”
서연은 그의 단호한 말에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요. 하지만...”
“하지만?”
강재현이 물었다.
“나는 계속 후회하며 살 수 없어요. 당신이 내게 어떤 의미였는지 말하지 않은 채로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날 밤, 서연은 강재현의 고백이 가져온 무거운 여운 속에서 밤을 지새웠다.
그의 말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감정의 폭발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진심이 그녀의 결정을 바꿀 만큼 강력한 것인지, 서연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