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흐를수록, 강이현은 점점 더 혼란스러워졌다.
처음에는 단순한 연애 컨설팅이었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배우기 위한 일종의 연습일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우와 함께하는 시간이 특별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웃으면 시선이 그곳에 머물렀고,
그녀가 자신을 향해 농담을 던지면 무심한 척하면서도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그러나 이현은 그런 자신의 변화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단순한 연애 컨설팅일 뿐이야.”
그는 스스로에게 몇 번이고 다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촬영장에서 예상치 못한 감정을 마주하게 되었다.
이날 촬영은 주인공이 연인과 재회하는 중요한 장면이었다.
서우는 촬영장 한쪽에서 스태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이현은 대본을 정리하며 그녀를 흘끗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서우가 상대 남자 배우와 다정하게 웃으며 대화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 배우는 요즘 떠오르는 신예 배우로,
극 중 이현과 대립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는 서우와 스스럼없이 농담을 주고받으며 웃고 있었고,
서우 역시 자연스럽게 그 분위기에 녹아들어 있었다.
이현은 이유를 알 수 없는 불편함을 느꼈다.
가슴 한쪽이 갑자기 답답해졌다.
그는 무심한 척하려 했지만, 시선이 저절로 그들에게 향했다.
서우가 남자 배우의 팔을 가볍게 두드리며 웃는 모습에,
이현은 알 수 없는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이게 뭐지…?’
그는 불편함을 애써 감추며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계속해서 그 장면이 반복됐다.
촬영이 시작되었지만, 그의 연기는 이상하리만큼 뻣뻣했다.
감독이 컷을 외치며 다가왔다.
“이현 씨, 오늘따라 감정이 더 잘 안 실리는 것 같은데요?”
이현은 짧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집중하려 했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이 어수선했다.
촬영이 끝난 후, 그는 서우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서우는 여전히 남자 배우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이현은 자신도 모르게 그들 사이로 걸어 들어갔다.
“서우 씨.”
서우가 고개를 들었다.
“어? 촬영 끝났어요?”
이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남자 배우를 향해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연기였어요.”
남자 배우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현은 이미 서우에게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할 말이 있어서요.”
서우는 살짝 놀란 듯 고개를 기울였다.
“뭔데요?”
이현은 한참을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잠깐 나와줄 수 있습니까?”
그들은 촬영장을 벗어나 한적한 복도로 나왔다.
서우는 팔짱을 끼고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죠?”
이현은 입을 열려다 망설였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왜 그 장면이 그렇게 거슬렸는지조차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아까…”
그는 결국 서우를 바라보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 배우랑… 그렇게 친했습니까?”
서우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피식 웃었다.
“그게 신경 쓰였어요?”
이현은 시선을 피하며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요.”
서우는 그의 반응을 보고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 관계는 어디까지나 연애 컨설팅일 뿐이에요. 강이현 씨도 알고 있잖아요.”
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정해놓은 선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의 감정은 이미 그 선을 넘어가고 있었다.
“그렇군요.”
그는 애써 담담한 척 웃었다. 하지만 서우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은 이전과 달랐다.
그 순간, 그는 더 이상 자신의 감정을 숨길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날 밤, 이현은 집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았다.
그는 촬영장에서의 장면을 다시 떠올렸다.
서우가 다른 남자와 웃으며 이야기하던 순간,
자신이 느꼈던 이상한 감정이 다시금 가슴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그는 손가락을 관자놀이에 갖다 대며 중얼거렸다.
“이게 대체 뭐지…”
그 순간,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서우였다.
이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서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늘 왜 그렇게 굳어 있었어요? 무슨 일 있었나요?”
이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스스로의 감정을 인정해야 했다.
그의 감정은 이미 단순한 연애 컨설팅을 넘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