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촬영이 마무리되는 순간, 강이현은 기묘한 감정을 느꼈다.
오랜 시간 준비하고 집중했던 작품이 끝났다는 해방감보다,
무언가가 끝나버린다는 아쉬움이 더 컸다.
그 감정의 정체를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한서우와의 계약도 끝이 났다.
마지막 촬영을 마치고 나오는 순간,
모든 스태프들이 환호하며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다.
감독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에게 다가왔다.
“이현 씨, 이번 감정 최고였어요. 덕분에 정말 멋진 작품이 나올 것 같네요.”
이현은 가볍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해서 한 사람만을 쫓고 있었다.
멀찍이 서서 촬영이 끝난 장면을 바라보는 서우.
그녀는 조용히 풍경을 바라보며 혼자만의 생각에 잠긴 듯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
그녀는 떠날 것이고, 자신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그는 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이현은 서우에게 다가갔다.
그녀는 그를 보더니 옅은 미소를 지었다.
“축하해요. 멋진 연기였어요.”
이현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짧은 축하 인사, 그리고 이별을 준비하는 듯한 표정.
그는 도저히 그 표정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제 가짜는 필요 없어요.”
서우의 표정이 흔들렸다.
“뭐라고요?”
이현은 단호한 눈빛으로 말했다.
“난 진짜를 원해.”
서우는 당황한 듯 한 걸음 물러섰다.
“이현 씨, 우리는 계약 관계였어요. 연애 컨설팅이었을 뿐이에요.”
이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핑계였어. 처음엔 연애 감정을 배우기 위해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우씨 보는 게 즐거웠고,
서우씨가 웃으면 같이 기뻤고,
서우씨 힘들어하면 나도 힘들었어요.”
그는 숨을 고르며 다시 한 걸음 다가섰다.
“그리고 이제는 확실해졌어요. 나는 진짜로 한서우라는 사람의 감정을 원해요.”
서우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게… 가능할까요?”
이현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한서우 씨가 가르쳐줬잖아요. 연애는 기술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그 순간, 촬영장의 조명이 하나둘씩 꺼지며 스태프들이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현과 서우는 주변의 소음도, 사람들의 움직임도 신경 쓰지 않았다.
이현은 천천히 손을 내밀어 서우의 손을 감쌌다.
“한서우 씨가 내 감정을 깨워줬어요.
그러니까 이제는, 가짜가 아닌 진짜로 내 곁에 있어 줄래요?”
서우는 여전히 망설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손을 감싸 쥔 이현의 온기,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단단한 눈빛 속에서 거짓을 찾을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저도… 사실 두려웠어요.”
이현이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서우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제는 저도 믿어보려고요.”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현은 그녀를 조용히 끌어안았다.
영화의 마지막 고백 장면처럼,
그러나 이번에는 연기가 아니라 진짜 감정을 담아 그녀를 꼭 안았다.
서우도 마침내 두 팔을 들어 그의 등을 감쌌다.
따뜻한 온기가 서로를 감싸며,
그동안 망설였던 감정들이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촬영장의 마지막 불이 꺼지고,
스태프들은 모두 떠났다.
하지만 그들 둘만은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제, 가짜가 아닌 진짜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다.
며칠 후, 이현은 서우를 찾아갔다.
그는 그녀가 일하는 연애 컨설팅 사무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서우가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봤다.
“여긴 왜…”
이현은 그녀에게 조용히 미소 지었다.
“연애 감정이 사라지지 않도록, 나도 배우는 입장에서 노력해야 할 것 같아서요.”
서우는 순간 멍해졌지만,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그녀는 가만히 이현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진짜 연애가 시작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