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최고의 배우, 강이현. 그의 이름이 스크린에 뜨면 관객들은 환호했고,
그의 연기가 시작되면 모두가 숨을 죽였다.
대한민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한 작품, 한 작품이 흥행 보증수표였고,
출연하는 광고마다 매진 행렬을 기록했다.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 완벽한 외모와 압도적인 연기력.
그는 명실상부 최고의 스타였다.
하지만, 지금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그런 강이현에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었다.
“강이현 씨, 정말 심각해요.”
감독의 한숨 섞인 목소리에 스태프들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스튜디오 한편, 대형 모니터에는 조금 전 촬영한 장면이 반복해서 재생되고 있었다.
이현이 맡은 배역,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남자가
오랜 시간이 지나 다시 그 사람과 마주하는 장면이었다.
대본상으로는 애틋함과 그리움, 복잡한 감정이 교차해야 했지만,
화면 속 그의 표정은 무미건조했다.
“이건 마치... 사랑을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사람 같잖아요.”
감독의 말에 현장이 술렁였지만,
이현은 무덤덤했다. 그는 대본을 천천히 접고,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다시 한 번 가겠습니다.”
“이현 씨, 이게 문제예요.”
감독이 고개를 저었다.
“단순히 대사를 반복해서 한다고 감정이 나오지 않아요.
감정을 담아서,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다시 만난 듯한 느낌으로 가줘야 해요.
사랑해본 적은 있잖아요?”
이현은 잠시 생각하는 듯했지만, 곧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글쎄요.”
그의 담담한 태도에 촬영장은 한순간 얼어붙었다.
감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배우라니.
누구도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하지만 이현의 태도를 보면 거짓말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는 너무도 덤덤하게, 사랑이라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인정했다.
감독은 한숨을 내쉬며 소속사 대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대표 역시 이 상황이 심각함을 인지하고 있었다.
그들의 눈빛이 교환되자마자, 촬영은 잠시 중단되었다.
이현은 촬영장 구석에 놓인 소파에 몸을 기댔다.
조명이 꺼진 스튜디오는 조금 전의 긴장감이 무색할 만큼 조용해졌다.
스태프들은 웅성거리며 해결책을 논의하고 있었지만,
이현은 그 모든 것에 무관심한 듯했다.
그에게 사랑이란 무엇일까. 감독이 말한 대로, 그는 정말 사랑을 해본 적이 없는 걸까?
그가 고민에 잠겨 있을 때, 매니저가 다가와 조용히 속삭였다.
“이현 씨, 대표님이 할 말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몸을 일으켰다.
소속사 대표가 촬영장에서 배우를 따로 부른다는 건 심상치 않은 일이었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가 있는 대기실로 향했다.
“앉아.”
대표는 이현을 보자마자 곧장 말을 꺼냈다.
이현은 말없이 맞은편에 앉았다.
대표는 잠시 말을 멈추고, 이현을 진지하게 바라보았다.
“이현아, 이번 작품 중요하잖아. 그런데 이대로 가다간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이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이었다.
대표는 한숨을 내쉬며 태블릿을 꺼내, 그의 필모그래피를 하나씩 스크롤했다.
“너는 정말 완벽한 배우야. 액션, 스릴러,
심지어 감정선이 깊은 가족 드라마에서도 호평을 받았어.
그런데 유독 로맨스 장르에서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말이 계속 나와.”
“그렇습니까.”
“그래. 팬들도 알아. 네가 감정을 표현하는 건 잘하지만,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그 미묘한 감정은 부족하다는 거.”
이현은 가만히 대표의 말을 들었다.
그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그는 연기를 할 때, 사랑이라는 감정을 만들어내는 것이 어려웠다.
누군가를 간절하게 바라본 적이 있었던가.
가슴이 뛰고, 심장이 조여오는 경험이 있었던가.
생각해보니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대표는 심각한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래서 이번에 특별한 사람을 붙일 거야.
너에게 진짜 사랑이 뭔지 가르쳐 줄 사람.”
“사랑을 가르쳐 준다고요?”
이현이 미간을 좁히자, 대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밀 연애 컨설턴트’라고 들어봤나? 유명한 연애 코치 중 한 명이야.
실전 연애부터 감정 컨트롤까지,
너처럼 연애 감각 없는 사람들 대상으로 코칭하는 사람이야.”
이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작게 웃었다.
“대표님, 진짜 사랑을 배우는 게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가능해.”
대표는 단호했다.
“연애 감정을 직접 경험해볼 수도 있고, 감정을 끌어올리는 법도 배울 수 있어.
이건 네 연기 커리어에도 중요한 기회야.”
이현은 잠시 고민했다. 감정을 배운다는 것이 정말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대표의 눈빛을 보니 거절할 수 없는 분위기였다.
그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어디 한번 받아보죠. 그 ‘연애 컨설턴트’라는 사람.”
대표는 만족스럽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좋아. 내일 오전에 미팅 잡아둘 테니 그때 봐.”
이현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기실을 나섰다. 그리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연애 컨설턴트?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사랑을 가르쳐준다는 거지?’
그렇게, 특별한 만남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