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이 지나고 강하늘과 설바람은 연극부 재건을 위한 첫 발을 내디뎠다. 그들은 연극부실로 사용되던 오래된 교실에 들어서며 고요하게 쌓인 먼지와 세월의 흔적을 마주했다. 낡은 커튼은 햇빛을 간신히 막아주고 있었고, 한쪽 벽에 기대어 있는 의상과 소품들은 무대의 영광스러운 순간들을 증언이라도 하듯 자리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팔을 걷어붙이고 본격적인 정리에 나섰다.
"이건 좀 쓸 만한데?"
하늘이 낡은 의상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그것은 어딘가 고전적인 느낌의 드레스로, 약간의 수선만 하면 여전히 무대 위에서 빛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냥 버리는 게 낫겠지,"
설바람은 그런 하늘의 손길을 힐끗 보며 쏘아붙였다.
"우리 지금 새로 시작하는 거잖아. 괜히 옛날 것에 집착하다 보면 발목만 잡혀."
하지만 하늘은 드레스를 조심스럽게 접어놓았다.
"그래도 이런 건 추억이잖아. 우리한테도 이런 날이 올지 모르니까,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남겨두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들은 그런 식으로 버릴 것과 남길 것을 분류하며 몇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날수록 교실은 점점 깨끗해졌고, 한편으로는 희망도 서서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여전히 한 가지 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바로 새로운 동료를 찾는 것이었다.
"근데 우리 같은 사람이 있을까? 연극부에 관심 있는 사람 말이야."
하늘이 벽에 전단지를 붙이며 말했다. 그의 손길이 서툴러 전단지가 약간 삐뚤어지자, 바람이 나서서 그것을 바로잡아주었다.
"없겠지. 다들 좋은 대학 들어가는데 혈안이 되어있으니까"
바람은 손에 들고 있던 풀을 내려놓으며 냉소적으로 말했다.
"이 학교 애들 대부분 연극보다 공부나 운동에 관심 많거든. 그리고 요즘 애들이 연극 같은 거에 얼마나 관심 있겠어?"
하늘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잖아. 우리가 먼저 재밌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언젠가는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생길 거야."
바람은 그런 하늘의 긍정적인 태도에 한숨을 쉬었지만, 마음속으로는 그의 의지를 인정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전단지를 학교 곳곳에 붙이며 작은 희망을 품었다. 누구라도 관심을 가져줄 사람이 나타나기를 바라면서.
그때였다. 두 사람 뒤로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하늘이 고개를 돌리자 긴 머리를 늘어뜨린 여학생이 서 있었다. 그녀는 교복 차림이 단정하고, 무엇보다 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혹시, 이거... 연극부 모집하는 거 맞나요?"
그녀는 벽에 붙어 있는 전단지를 가리켰다. 목소리는 작지만 확신이 담겨 있었다.
하늘은 반가운 마음에 빠르게 대답했다.
"맞아요! 어서오세요! 가입하시려고요?"
여학생은 잠시 고민하는 듯 보였지만 곧 고개를 끄덕였다.
"저, 연극은 한 번도 안 해봤지만... 꼭 해보고 싶어서요."
바람이 옆에서 그녀를 관찰하듯 바라보았다. 그녀의 태도와 표정을 살피며 묻듯 말했다.
"이름은 뭐야?"
"은별이에요. 한은별."
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태도는 소극적이었지만,
눈빛만은 간절함을 담고 있었다.
하늘은 그녀의 이름을 되뇌며 환하게 웃었다.
"좋아, 은별아. 너, 우리랑 같이 시작하자!"
은별은 하늘의 말에 작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긴장과 설렘이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하늘과 바람은 새로운 동료의 합류에 들떠 있었다. 연극부에 첫 번째 멤버가 추가된 순간이었다.
그 후 며칠 동안 세 사람은 연극부의 재건을 위한 계획을 세웠다. 하늘은 열정적으로 새로운 대본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바람은 무대 장치와 의상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은별은 모든 과정을 배우려는 듯 꼼꼼히 메모를 하며 따라왔다.
"연극은 팀워크가 가장 중요해."
하늘이 말했다. 그는 은별에게 연극의 기본 개념과 무대 위에서의 자세를 설명하며 말했다.
"혼자 잘하는 게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도와가며 완성해가는 거야."
바람이 그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우리처럼 작은 팀에서는 특히 더 그래. 각자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내야 큰 그림이 완성돼."
은별은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그럼, 제가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요?"
하늘과 바람은 잠시 눈빛을 교환했다. 하늘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정해진 건 없지만, 네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걸 찾으면 돼. 우리도 그걸 도와줄게."
은별은 감사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정말 감사합니다. 제가 많이 부족해도 꼭 열심히 할게요."
바람은 그런 은별을 보며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태도는 단순히 열심히 하겠다는 것을 넘어선 무언가를 담고 있었다. 그것은 간절함이었고, 무언가를 통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그렇게 연극부는 점점 자리를 잡아갔다. 오래된 교실은 세 사람의 손길로 조금씩 변해갔고, 그들의 꿈도 함께 커져갔다. 은별은 처음엔 소극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적극적으로 아이디어를 내놓기 시작했다. 하늘과 바람은 그런 그녀를 격려하며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하늘은 밤하늘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가 진짜 무대에 서는 날이 올까?"
바람은 그 옆에서 조용히 미소 지었다.
"온다. 그렇게 만들 거니까."
그들은 몰랐다. 앞으로 어떤 어려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들은 서로를 통해 배우고, 함께 성장하며, 연극부를 만들어갈 것이었다. 은별의 등장으로 시작된 이 이야기는 이제 막 서막을 올렸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