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은 회사 식당에서 민재와 함께 점심을 먹고 있었다. 분위기는 평소보다 더 부드러웠다.
가족 농가에서의 해프닝 이후, 민재는 나영에게 더 가까이 다가오는 듯했다.
"윤나영 씨, 요즘 좀 더 편안해 보이세요. 가족분들 덕분인가요?"
민재의 말에 나영은 얼굴이 살짝 달아올랐다.
"그냥... 가족들이 좀 소란스럽긴 해도 잘 챙겨주니까요."
그녀가 부끄러워하며 말하자 민재는 웃음을 터뜨렸다.
"소란스럽다는 표현이 딱 맞네요.
하지만 그런 가족분들 덕분에 윤나영 씨도 밝고 재밌는 사람이 된 것 같아요."
그 말에 나영은 민재를 가만히 바라봤다. 그의 다정한 눈빛에 묘한 설렘이 느껴졌지만,
이내 그녀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팀장님은 가족 모임에서 늘 조용하고 차분한 분이셨죠?"
민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저는 외동아들이라 가족끼리 모여도 조용했죠.
그런데 사실 그렇게 차분한 건 아니었어요."
나영은 흥미로워하며 물었다.
"아니라고요? 어떤 모습이셨는데요?"
민재는 살짝 멋쩍어하며 웃었다.
"사실 고등학생 때는 조금 엉뚱했어요. 교내 밴드에서 드럼을 쳤거든요."
그의 고백에 나영은 놀라며 입을 벌렸다.
"팀장님이요? 드럼을 쳤다고요? 진짜예요?"
"네, 믿기 힘들겠지만요. 그때는 꽤나 반항적이었던 것 같아요."
민재가 고등학교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웃는 모습에 나영은 그를 새롭게 느꼈다.
"그럼 지금도 드럼을 칠 줄 아세요?"
"가끔 생각나면 연습해요. 윤나영 씨도 악기 연주 같은 거 하세요?"
그 질문에 나영은 살짝 망설였다. 그녀는 피아노를 잘 쳤지만,
회사에서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었다.
"저도 조금 치긴 하는데요..."
"피아노요?"
민재가 놀란 표정을 짓자 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릴 때 조금 배웠어요. 하지만 팀장님처럼 대단한 건 아니에요."
민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윤나영 씨가 연주하는 모습, 정말 멋질 것 같아요."
그날 저녁, 나영은 집에서 오랜만에 피아노 앞에 앉았다.
어릴 적 배운 곡들을 천천히 연주하다 보니, 민재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내가 피아노 연주하는 모습을 민재 팀장이 본다면 어떤 반응일까?’
그녀는 문득 민재가 드럼을 연주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팀장님도 꽤나 엉뚱한 면이 있었구나. 그걸 알게 되니 더 인간적으로 느껴져.’
하지만 동시에 그녀는 불안한 마음도 들었다.
자신이 지금까지 숨겨온 많은 비밀들 중 일부가 이미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나영은 민재와 함께 회의실로 들어갔다. 회의 준비를 하던 중 민재가 갑자기 말했다.
"윤나영 씨, 지난번에 피아노 치신다는 얘기 했잖아요.
다음 주에 사내 동호회 발표회가 있는데, 혹시 참가해보실 생각 없으세요?"
나영은 당황했다.
"발표회요? 저, 그런 건 해본 적이 없어서요."
민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더더욱 좋은 기회죠. 윤나영 씨의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는 자리일 수도 있고요.
제가 응원할게요."
그의 권유에 나영은 망설였지만,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한번 생각해볼게요."
회의가 끝난 후, 나영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녀는 민재에게 자신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으면서도, 모든 비밀이 밝혀질까 두려웠다.
‘내가 정말 무대에 서서 연주를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민재 팀장은 그런 나를 어떻게 볼까?’
그녀의 마음속에 설렘과 불안이 뒤섞인 채, 새로운 도전의 서막이 열리려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