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현은 여전히 교도소의 다른 죄수들과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가 중범죄 혐의로 수감된 흉악범이라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동은 유난히 자유로워 보였다. 대다수의 죄수들은 의무실을 단순히 치료 목적을 위해서만 찾았지만, 도현은 세준과의 시간이 끝난 뒤에도 의무실을 쉽게 떠나려 하지 않았다.
세준은 그런 도현의 행동이 점점 더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와의 거리를 두려 애썼지만, 도현은 그의 생활과 마음속에 서서히 침투해 들어오고 있었다. 도현이 의무실을 자주 찾는 이유가 단지 치료 때문이 아니라는 생각이 세준의 마음속에서 점차 확신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어느 날, 도현은 팔목에 가벼운 상처가 생겼다며 의무실에 찾아왔다. 세준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쉬었지만, 무덤덤한 태도로 그를 앉히고 상처를 소독하기 시작했다. 도현은 세준의 손이 팔목에 닿는 순간 피식 웃으며 시선을 고정했다.
도현: “의사 선생님, 여전히 차가운 건 변함이 없네요. 어떻게 그렇게 감정이 없을 수 있죠? 그게… 훈련된 건가요?”
세준은 그의 질문에 잠시 손을 멈췄다. 그 후 천천히 숨을 고르고, 최대한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세준: “이곳에서 제 역할은 단지 치료일 뿐입니다. 감정은 필요 없죠.”
도현: (흠칫 웃으며) “하, 역시 예상대로네요. 선생님은 뭐랄까… 스스로를 잘 속이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요.”
세준은 그의 말에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도현의 태도는 여전히 가벼웠지만, 그 눈빛은 전혀 가볍지 않았다. 그가 진료를 받으러 온 게 아니라, 세준을 시험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세준: “불필요한 말은 그만 두세요. 저는 단지 여기서 당신을 치료할 뿐입니다.”
그러나 세준이 손을 떼려는 순간, 도현은 그의 손목을 갑작스레 붙잡았다. 그 돌발적인 행동에 세준은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도현의 얼굴은 가까이 다가와 있었고, 그의 눈빛은 여전히 세준을 꿰뚫어보려는 듯했다.
도현: “왜 이렇게 경계하는 거죠, 의사 선생님? 선생님도 사람인데, 이렇게 차갑게 굴 필요는 없잖아요.”
세준은 도현의 눈빛에서 느껴지는 묘한 도발에 불쾌함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꼈다. 최대한 냉정을 유지하려고 애쓰며 손을 떼려 했지만, 도현은 손목을 꽉 쥐고 놓아주지 않았다.
세준: “그만 두세요. 여기서는 그런 말도, 행동도 삼가는 게 좋습니다.”
도현: (미소 지으며) “하지만… 여긴 교도소잖아요. 이런 곳에서 감정을 감추고, 거리 두는 게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요?”
도현은 천천히 손을 놓았지만, 그 미소는 세준을 조롱하듯 여유로워 보였다. 그와의 거리를 두려는 세준의 마음을 간파한 듯, 도현은 그와의 간격을 더 줄이며 은근한 미소를 띠었다.
도현: “이렇게 가까이서 보니까… 선생님도 꽤나 민감한 사람이네요. 오히려 무감각한 척하는 게 더 힘들어 보일 정도로요.”
세준은 그의 말이 불쾌하게 느껴졌지만, 최대한 차분하게 거리를 두며 대꾸했다.
세준: “진료는 끝났습니다. 나가세요.”
그러나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고, 여유롭게 그의 얼굴을 살펴보며 한 마디를 더 던졌다.
도현: “나가라니… 그렇게 냉정하게 말하지 마세요. 사실, 선생님도 이런 자극이 싫지는 않잖아요?”
세준은 더 이상 그의 말을 들을 수 없다는 듯 자리를 정리하며 등을 돌렸다. 도현의 말과 행동이 그의 신경을 날카롭게 건드리고 있었다. 그러나 도현은 여전히 자리를 떠나지 않고, 한 발짝 더 다가와 세준의 뒤에 서서 말했다.
도현: “의사 선생님. 이런 질문, 들어본 적 있나요? 사람이 감정을 숨긴다고 그게 사라지는 걸까요? 아니면, 감춰도 결국 드러나기 마련인 걸까요?”
세준은 더 이상 그와 대화하고 싶지 않다는 듯 깊은 한숨을 내쉬고 그를 돌아보지 않았다.
세준: “당신이 무슨 말을 하든 제 관심 밖입니다. 이제 나가세요.”
도현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한 걸음 물러서며 마지막으로 말을 던졌다.
도현: “의사 선생님도 언젠가는 여기서 나랑 다른 모습으로 만나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물론,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요.”
진료가 끝나고 도현이 나간 뒤에도, 세준의 마음에는 불편한 감정이 남아 있었다. 도현이 남긴 마지막 말과 그의 태도가 계속 머릿속을 떠돌았다. 그가 의무실을 떠난 후에도 그의 말투와 표정이 끊임없이 세준의 신경을 긁어댔다.
세준: (혼잣말로) “도대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 거지…?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게 아니라, 나를…”
세준은 생각을 멈추고 싶었지만, 도현의 눈빛과 그의 말이 마음속에서 계속해서 떠오르며 불쾌감과 함께 묘한 불안을 자아냈다.
그동안 감정을 철저히 차단해왔던 스스로가 조금씩 흔들리는 것을 느끼며, 자신의 내면에 자리 잡는 알 수 없는 불안과 혼란이 서서히 커져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