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장미를 꼭 쥐고 루시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더는 흔들리지 않겠다는 결심이 그녀의 눈빛에 담겨 있었다.
“좋아요. 저와 함께 싸운다고 했죠. 이제 제가 선택한 길을 끝까지 가볼게요.”
루시안은 미소를 지었다.
“너답군. 그렇게 강한 의지를 보이니 마음에 든다.”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을 거예요. 벨라토르가 우리를 노린다면, 그를 막아야죠.”
루시안은 그녀에게 다가와 손끝으로 그녀의 손목 문양을 쓸어내렸다.
붉은 문양이 그의 손길을 따라 은은하게 빛났다.
“하지만 너는 아직 완전히 각성하지 않았다.”
“각성…?”
“그래. 네가 가진 힘은 지금의 너로선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너의 선택에 따라 그 힘이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결정될 것이다.”
수현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붉은 장미 문양은 그녀의 심장 박동에 맞춰 고요하게 빛나고 있었다.
‘이 문양이 곧 나의 힘… 그리고 내 운명을 상징하는 거구나.’
수현은 루시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 완전히 각성할 수 있죠?”
루시안의 표정이 깊어졌다.
“너의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하고, 스스로 선택하라. 생명을 꽃피울 것인지, 파괴의 길로 나아갈 것인지.”
수현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거울 속에서 들려왔던 속삭임, 벨라토르의 경고, 어머니의 희생… 모든 것이 그녀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나는 누구도 잃고 싶지 않아. 내가 이 힘을 가지고 있다면, 지킬 수 있는 건 지켜야 해.’
그녀는 눈을 떠 단호하게 말했다.
“난 생명을 택할 거예요.”
루시안은 그녀의 대답을 듣고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 선택이 너를 어떤 길로 이끌지, 나도 지켜보겠다.”
그때, 공기가 갑자기 차가워졌다.
꽃집 창문이 스스로 열리며 찬바람이 안으로 밀려들었다.
수현은 몸을 돌려 창문을 바라보았다.
“뭐죠…?”
그리고 창문 밖 어둠 속에서 검은 그림자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림자는 곧 뚜렷한 형체를 이루었고, 그 속에서 은빛 머리칼을 가진 남자가 나타났다.
“벨라토르…”
수현은 그 이름을 입에 올렸다.
“이제야 네가 나를 알아보는군.”
벨라토르는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그의 시선은 루시안과 수현을 오가며 탐욕스럽게 빛났다.
“생명을 택했다고 들었어.”
수현은 그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네. 난 사람들을 지킬 거예요. 당신 같은 악마가 세상을 파괴하는 건 두고 보지 않겠어요.”
벨라토르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내가 널 시험해 보지.”
그는 손을 들어 올리자, 검은 덩굴이 허공에서 뻗어나왔다.
덩굴은 수현을 향해 날아들었지만, 그녀는 물러서지 않았다.
수현은 손끝에 힘을 주었다. 손목의 문양이 빛나면서 그녀의 손에서 붉은 장미가 피어났다.
“난 당신에게 지지 않아요.”
그녀는 장미를 던지며 말했다.
붉은 장미의 가시가 날아가 벨라토르의 덩굴을 찢어버렸다.
벨라토르는 놀란 듯 눈을 가늘게 떴다.
“이 정도로 강해질 줄은 몰랐군.”
수현은 벨라토르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당신이 우리 가족을 파멸로 이끌었죠. 하지만 이제 그 고리는 제가 끊을 거예요.”
벨라토르는 여전히 여유로운 표정을 지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흥미롭군. 그럼 얼마나 더 강해질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
그는 다시 허공 속으로 사라지며 마지막 말을 남겼다.
“하지만 기억해라. 악마의 신부로서 너에게 주어진 시간은 무한하지 않다.”
벨라토르가 사라진 후, 수현은 깊은 숨을 내쉬며 손을 내려놓았다.
루시안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잘했다.”
수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이제 모든 게 끝난 건가요?”
루시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시작이다.”
수현은 그 말에 미소를 지으며 단단히 말했다.
“좋아요. 그럼 끝까지 함께 싸워봐요. 당신의 마음도, 제 영혼도 지키기 위해서요.”
루시안은 그녀의 말을 듣고 처음으로 진심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너는 나의 신부이자, 나의 운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