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현은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꽃집 문을 열었다. 따스한 햇살이 꽃잎 위로 부드럽게 내리쬐는 아침. 그녀의 일상은 언제나 이곳에서 시작됐다.
"어서 오세요."
익숙한 인사말이 나오기도 전에 문 너머로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코트를 입고, 윤이 나는 구두를 신은 남자. 흔히 볼 수 없는 압도적인 외모와 차가운 눈빛.
‘손님인가?’
수현은 잠시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꽃을 사러 오셨나요?"
남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의 미소는 아름다웠지만, 어딘가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아니, 이수현 씨를 만나러 왔습니다."
수현은 눈을 깜빡였다.
"저를요?"
"그래요. 당신이 내 신부가 될 사람이니까."
순간, 가게 안의 공기가 묘하게 무거워졌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예요?"
수현이 당황한 듯 물었지만, 남자는 태연하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의 눈은 마치 깊은 어둠 속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나는 루시안. 지옥의 악마왕이다."
수현은 그 말을 듣자마자 웃음을 터뜨렸다.
"지옥의 악마왕이요? 이런 장난은 처음이네요."
하지만 루시안의 표정은 진지했다.
"당신은 믿지 않겠지. 하지만 곧 알게 될 거야. 당신은 나와 계약을 맺을 운명이다."
수현은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그의 눈빛에서 묘한 설득력이 느껴졌다.
"계약이요?"
루시안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내 신부가 되면, 네가 원하는 능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낮게 울렸다.
"나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너의 영혼을 빼앗아가겠다."
그 말에 수현은 몸이 굳어버렸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수현은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루시안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할 테니까."
그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꽃집 문을 나섰다.
수현은 온종일 마음이 복잡했다. 루시안이라는 남자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내가 악마의 신부가 될 운명이라니... 말도 안 돼.'
하지만 그날 밤, 수현의 일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갑자기 뒤틀리고, 거울 밖에서 이상한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수현... 네가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수현은 거울을 향해 소리쳤다.
"누구야! 뭐야 이게!"
그리고 거울 속에서 다시 나타난 얼굴. 익숙한 남자의 모습이었다.
"다시 만났군, 나의 신부."
거울 속에서 루시안이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