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눈앞의 광경을 믿을 수 없었다. 거울 속에서 루시안의 모습이 또렷하게 나타나 있었다.
"당신… 어떻게 여기에 있는 거예요?"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평범한 일상이 하루 만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나는 네 곁에 언제든 나타날 수 있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으니까."
루시안의 목소리는 부드러웠지만, 그 안에는 깊은 어둠이 깃들어 있었다. 수현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며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 이건 꿈이야. 악마가 세상에 어디 있어."
"꿈이 아니라 현실이다."
그가 손을 뻗자 거울 속에서 검은 안개가 뿜어져 나와 방 안을 휘감았다. 온몸을 감싸는 섬뜩한 기운에 수현은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왜… 왜 하필 나죠?"
수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루시안이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대답했다.
"네가 나를 불렀으니까."
"불렀다고요? 난 그런 적 없어요!"
루시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그럴까? 네가 아무것도 모르는 채 나와 얽힌 걸까?"
수현의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졌다. 그때, 방 안의 꽃병이 갑자기 깨지며 날카로운 유리 조각이 바닥에 흩어졌다. 수현은 깜짝 놀라 물러섰지만, 그 유리 조각이 허공에서 천천히 떠올라 다시 꽃병의 형태로 되돌아갔다.
"이게…"
"네가 아직 깨닫지 못한 것뿐이다."
루시안은 수현의 앞으로 다가왔다.
"너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내가 너를 선택한 거야. 네가 나와 계약을 맺는다면 그 힘을 완전히 각성시킬 수 있지."
수현은 두려움과 호기심 사이에서 갈등했다.
"만약… 계약을 안 하면요?"
루시안의 표정이 순간 차가워졌다.
"그렇다면 네 주변에서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날 거야. 네가 원하지 않아도."
그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방 안에 있던 꽃들이 시들어 검게 변하기 시작했다. 마치 죽음이 스며든 듯한 모습이었다.
"멈춰요!"
수현이 소리치자 루시안은 손을 내렸다.
"네가 결정해. 나와 계약을 맺을지, 아니면 네가 사랑하는 것들이 모두 사라지는 걸 지켜볼지."
수현은 주먹을 꽉 쥐고 그를 바라봤다.
"당신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죠?"
루시안은 잠시 침묵했다가 말했다.
"나 역시 선택을 강요당한 적이 있지. 그래서 나의 신부를 찾아야만 해."
그의 목소리에는 쓸쓸함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동정심을 유발하기엔 그의 존재가 너무나도 위험했다.
"결정은 서두르지 마라. 하지만 시간이 많지 않아."
루시안이 손을 흔들자 거울 속 모습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방 안의 기이한 기운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수현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악마의 신부 계약이라니… 내가 미쳤나 봐."
하지만 그날 이후, 이상한 일들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꽃집의 꽃들이 이유 없이 시들어가고,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불길한 속삭임을 남기고 갔다.
“신부… 선택해라… 신부…”
그 속삭임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리고 일주일 뒤, 수현은 거울 앞에 섰다.
"루시안."
그 이름을 부르자마자 거울 속에서 그의 모습이 다시 나타났다.
"결정했나?"
수현은 눈을 마주쳤다.
"내가 계약을 맺으면…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죠?"
루시안은 미소를 지었다.
"내 마음을 얻는 것.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조건이지."
수현은 그 말을 곱씹었다.
'악마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영혼을 잃는다…?'
하지만 더 이상 도망칠 수도 없었다.
"좋아요. 계약하죠."
그리고 그 순간, 거울에서 붉은 장미 덩굴이 뻗어 나와 그녀의 손목을 감싸며 문양을 새겼다.
"네가 선택한 거다. 이제부터 넌 나의 신부다."
루시안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