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의 손목에 새겨진 붉은 문양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건… 뭐죠?”
문양은 마치 장미 덩굴이 그녀의 피부에 새겨진 것처럼 보였다. 수현이 놀라서 손목을 쓸어보았지만, 아무리 닦아도 지워지지 않았다.
“계약의 증표다.”
거울 속 루시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제 너는 내 신부로서 나와 연결된 거야.”
수현은 손목을 움켜쥐고 그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원하는 건 뭐예요? 왜 나 같은 평범한 사람을 신부로 삼으려는 거죠?”
루시안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평범하다고?”
그는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평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아. 네 피에는 고대의 힘이 잠들어 있다. 네가 몰랐을 뿐이지.”
수현의 눈이 흔들렸다.
“고대의… 힘?”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꽃을 다루는 솜씨가 남다르지 않나? 단순한 취미나 재능이 아니야. 그것은 네 안에 있는 특별한 능력 때문이지.”
수현은 생각해 보았다. 어린 시절부터 꽃들이 자신에게 유난히 잘 반응하곤 했다. 시든 꽃도 그녀의 손길을 받으면 생기를 되찾았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우연이라고 생각해왔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내 능력이 당신과 어떤 관계가 있죠?”
루시안은 거울 속에서 손을 뻗었다. 그러자 거울 밖으로 그의 손이 실제로 튀어나와 수현의 손목을 잡았다.
“너의 힘이 내 세계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나를 파멸시킬 수도 있어.”
수현은 그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그의 손길은 놀랍도록 부드러웠다.
“난 네가 내 곁에 있길 바란다, 수현.”
그의 목소리에는 묘한 진심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수현은 그가 무슨 속셈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럼… 내가 당신 곁에 있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거죠?”
루시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때는 네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잃게 될 거다.”
그 말에 수현은 숨을 삼켰다.
“이제 네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봐. 네가 계약을 거부했다면 더 심각한 일이 일어났을 거야.”
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계약을 맺기 전부터 꽃들이 시들고, 이상한 속삭임이 들리던 게 사실이었다.
“내가 신부가 되는 조건은 뭐죠?”
루시안은 입꼬리를 올렸다.
“단 하나. 내 마음을 얻어라.”
“……그게 전부예요?”
수현은 믿기 힘든 표정이었다. 악마의 마음을 얻으라는 조건이 너무 막연했기 때문이다.
“악마가 마음을 준다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나를 진정으로 움직여야 한다.”
루시안은 수현의 눈을 깊게 들여다보며 말했다.
“하지만 기억해라. 네가 실패한다면 너의 영혼은 내 것이 될 것이다.”
수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내 영혼이 걸린 계약이라니… 이걸 내가 정말 감당할 수 있을까?’
그날 밤, 수현은 침대에 누워 손목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문양이 희미하게 붉은빛을 내며 맥박처럼 뛰고 있었다.
‘내가 악마와 계약을 맺다니… 이제 돌아갈 수는 없는 걸까?’
수현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창문 밖에서 바람이 불며 속삭임이 들려왔다.
“신부… 루시안의 신부… 선택은 끝났다…”
수현은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어보았지만, 바깥에는 아무도 없었다.
“누구야?”
하지만 대답은 없었다. 대신 문 앞에 작은 검은색 장미 한 송이가 놓여 있었다.
수현은 그것을 집어 들고 중얼거렸다.
“이건… 루시안이 남긴 건가?”
검은 장미는 얼핏 보기엔 시들어 보였지만, 손에 닿는 순간 새빨간 꽃잎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순간, 그녀의 손목 문양이 다시 뜨겁게 타올랐다.
‘계약이 성립됐다는 증거인가…?’
그때 거울 속에서 다시 루시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부터 너의 삶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을 거다.”
수현은 그의 목소리에 대답 대신 단단히 주먹을 쥐었다.
‘그래. 이미 시작된 거라면 도망치지 않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