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무릎을 꿇고 헉헉거리며 숨을 몰아쉬었다. 그녀의 손에는 여전히 검은 장미가 쥐어져 있었고, 그 꽃잎은 피처럼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게… 첫 시험이었다고요?”
루시안은 천천히 수현 앞으로 걸어왔다. 그의 발걸음은 묘지의 침묵 속에서 부드럽지만 위압적으로 울렸다.
“네가 두려움을 마주하고 이겨냈으니, 이제 네 힘은 조금씩 깨어나고 있다.”
수현은 손목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그 문양이 더욱 선명하게 빛나고 있었다. 묘하게 따뜻한 느낌이 손목을 타고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이 문양이… 내 힘을 나타내는 건가요?”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 문양은 네 힘의 원천이자, 우리 계약의 증거다. 네가 힘을 쓸수록 문양은 더 깊은 빛을 띠게 될 거야.”
수현은 주먹을 꽉 쥐었다.
“내가 원하지도 않은 계약인데…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겠죠.”
루시안은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렇다. 너는 나와 이미 연결되었고, 이 계약은 깨질 수 없다.”
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루시안을 똑바로 바라봤다.
“그럼 나도 당신에게 조건을 걸겠어요.”
루시안의 눈이 흥미롭게 빛났다.
“조건?”
“당신이 내 영혼을 빼앗는 일은 절대 없을 거예요. 내가 실패하더라도, 내 영혼은 내가 지킬 거예요.”
루시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대신, 네가 내 마음을 얻지 못하면 네 몸과 힘은 내 소유가 된다.”
“……몸과 힘이요?”
“그렇다. 네 몸은 악마의 신부로서 내 곁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다.”
수현은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는 걸 느꼈다. 악마와의 계약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날 밤, 수현은 꽃집으로 돌아와 조용히 앉아있었다. 주변은 고요했지만, 그녀의 마음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된 걸까… 왜 하필 나지?’
그때 문득 그녀의 손목 문양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 또…!”
수현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며 손목을 움켜쥐었다. 문양에서 붉은 빛이 방 안을 가득 채우더니, 그 빛 속에서 루시안의 모습이 나타났다.
“왜… 또 나타난 거예요?”
루시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너에게 경고하러 왔다.”
“경고요?”
그는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며 말했다.
“너의 힘이 깨어나면서 다른 존재들도 너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수현은 그 말을 듣고 소름이 돋았다.
“다른 존재…?”
“인간 세계에 숨어 있는 악마들이다.”
루시안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너는 이제 단순한 인간이 아니다. 너를 노리는 악마들이 하나둘씩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네 힘을 빼앗기 위해 어떤 짓이든 할 거야.”
수현은 손을 꽉 쥐었다.
“그럼… 내가 그들을 막아야 한다는 거예요?”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네가 나와 계약을 맺은 이상, 너는 더 이상 평범한 삶을 살 수 없다. 네 힘을 완전히 깨워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수현은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들이쉬었다.
‘더 이상 도망칠 수는 없어… 이 계약을 맺은 이상, 내가 직접 싸워야 해.’
눈을 뜬 수현의 눈빛은 흔들림이 없었다.
“알겠어요. 내가 할게요.”
루시안은 그녀의 결심을 확인하고는 미소를 지었다.
“좋아. 곧 너를 시험할 새로운 적이 나타날 거다. 준비해라.”
한편, 어둠 속에서 수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있었다.
“이수현… 그녀가 악마왕의 신부가 되었대.”
“그렇다면… 그녀의 힘을 빼앗아야겠군.”
그림자 속에서 낮고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 찾아가자. 그녀가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지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