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현은 창문을 통해 멀어져가는 검은 안개를 바라보며 여전히 손끝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벨라토르라는 악마의 등장은 그녀의 불안감을 더욱 키웠다.
"벨라토르... 그는 대체 누구죠? 왜 당신을 그렇게 노리고 있는 건가요?"
루시안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수현을 향해 몸을 돌렸다.
"벨라토르는 한때 나의 가장 충성스러운 전사였다. 하지만 그의 야망은 그를 어둠으로 이끌었지. 이제 그는 내 힘을 빼앗고 지옥의 새로운 왕이 되려고 하고 있다."
수현은 그 말을 곱씹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결국 제가 노려지는 이유도 당신 때문이군요. 저를 지켜주겠다는 말, 그저 자기 보호를 위한 거 아닌가요?"
루시안은 미묘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그의 붉은 눈동자가 깊은 어둠처럼 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부분적으로는 맞다. 하지만 나 역시 내가 모르는 이유로 너에게 끌리고 있다. 그건 단순한 계약 때문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수현은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말이 진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제가 이 상황을 감당하기엔 너무 힘들어요. 저는 그저 평범한 꽃집 주인이었을 뿐이라고요."
루시안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그녀를 응시했다.
"하지만 이제 네 안에 숨겨진 힘이 깨어나고 있다. 그 힘은 단순한 인간의 것이 아니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하다."
수현은 손목의 문양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붉은 장미 덩굴이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 문양이 자신의 새로운 운명을 의미한다는 걸 그녀는 점점 실감하고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싸워야 할지 모르겠어요. 내 힘을 어떻게 써야 할지도..."
루시안은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의 힘은 자연에서 비롯된다. 꽃과 식물, 그 모든 생명체가 너의 힘의 일부다. 네가 두려움을 이겨낼 때, 그 힘은 더욱 강해진다."
수현은 그의 말을 곱씹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마음 한구석에서는 여전히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때, 창밖에서 다시 바람이 불어왔다. 그리고 그 바람 속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현아..."
수현은 깜짝 놀라 창문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신 작은 검은색 장미 한 송이가 창틀 위에 놓여 있었다.
"이건 뭐지..." 수현은 그 장미를 손에 들고 천천히 살펴보았다. 검은 장미는 마치 금방이라도 시들어버릴 것처럼 보였지만, 동시에 강렬한 생명력이 느껴졌다.
루시안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와 장미를 바라보았다.
"벨라토르가 남긴 경고다. 그는 곧 다시 올 것이다. 이번엔 더 많은 자들을 데리고."
수현은 장미를 꼭 쥐고 물었다.
"그럼 제가 어떻게 해야 하죠? 이번엔 혼자선 못 막을 것 같아요."
루시안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 나와 함께 싸우면 된다. 그리고 네가 점점 더 네 힘을 깨우면 어떤 적이라도 물리칠 수 있다."
수현은 그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당신과 함께 싸운다고요? 그럼 당신도 저를 지킬 이유가 있는 거겠죠?"
루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하지만 네가 먼저 선택해야 한다. 네가 나를 믿을 것인지, 아니면 네 스스로의 길을 찾을 것인지."
수현은 깊은 숨을 들이쉬고 결심을 굳혔다.
"믿을게요. 하지만 조건이 있어요. 당신도 저를 속이지 않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루시안의 눈이 반짝였다.
"약속하지."
그때 다시 바람이 불며 문이 흔들렸다. 이번엔 검은 그림자들이 바깥에서 또다시 움직이는 게 보였다.
루시안은 그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제 너의 결심을 시험할 시간이야. 네가 두 번째 시험을 통과할 수 있는지 보여줘라."
수현은 그의 손을 잡으며 속삭였다.
"저도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겠어요. 이 힘을 제대로 쓰는 법을 배우고 싶어요."
루시안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좋아. 그럼 함께 어둠 속으로 들어가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