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와 민주는 점점 더 감정을 숨기는 데 익숙해져야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났다.
조심스러운 대화, 조심스러운 만남, 조심스러운 감정.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데,
마음껏 사랑할 수 없는 현실이 점점 더 가슴을 조여왔다.
민주는 H가 자신을 보호하려고 점점 거리를 두는 걸 느꼈다.
그의 말투는 여전히 다정했지만, 예전과 같지는 않았다.
연락하는 횟수는 줄어들었고,
만나기로 한 날에도 갑작스러운 스케줄을 이유로 약속이 취소되는 일이 많아졌다.
H도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민주에게는 상처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팬들 사이에서는 H의 연애설이 점점 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소속사는 계속해서 루머를 부인했지만,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온라인에서는 그의 과거 인터뷰부터 최근의 행동까지 모두 분석하며
연애 중이라는 근거를 찾아내려 했다.
결국, ‘H가 몰래 연애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터지고 말았다.
H는 무대에 서 있을 때조차 집중할 수 없었다.
그는 언제나 프로다운 모습을 유지해 왔지만,
요즘 들어 작은 실수들이 늘어났다.
공연 중 안무 타이밍이 살짝 늦거나,
인터뷰에서 질문을 듣고도 몇 초간 멍해지는 일이 잦아졌다.
팬들은 그런 H의 변화를 눈치챘고, 일부는 그의 정신적 상태를 걱정했다.
하지만 대다수는 ‘연애 때문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민주 역시 그 변화를 느끼고 있었다.
H와 연락할 때마다 그의 목소리는 한층 지쳐 있었고,
예전처럼 밝게 웃는 일이 줄어들었다.
그녀는 그가 겪고 있는 부담을 이해하려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불안이 커졌다.
‘내가 그를 힘들게 만들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이 그녀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날 밤, 민주와 H는 처음으로 심각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H… 이젠 정말 힘들어요."
민주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그렇지 않아요.
당신이 점점 멀어지는 게 느껴지고,
나도 이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요."
H는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깊은 슬픔이 서려 있었다.
오랫동안 고민해왔던 말들이 입술 끝에서 맴돌았다.
"미안해요. 내가 잘못했어요. 당신을 지키고 싶었는데,
오히려 힘들게 만든 것 같아요."
민주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H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힘들어하고 있는지.
하지만 이 관계는 점점 더 두 사람을 지치게 만들고 있었다.
"우리… 지금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때인 것 같아요.
" 민주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무대에서 가장 빛나야 하고,
저는 그런 당신을 좋은 팬으로서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H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그의 표정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저도 요즘 너무 힘들어요. 일이 힘든 게 아니라…
당신과 함께하면서도 온전히 행복할 수 없다는 게 제일 괴로워요.
제가 점점 저 자신을 잃어가는 것 같아요."
민주는 그의 손을 살며시 잡았다.
"우리가 지금 헤어진다고 해서,
제가 당신을 응원하는 마음이 사라지는 건 아니에요.
처음 당신을 좋아했던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난 언제나 당신을 응원할 거예요."
H는 끝내 눈을 감았다가 떴다.
그의 눈가가 붉어졌다. 하지만 그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요. 당신이 늘 내 곁에 있어 주길 바랐어요. 그게 어떤 형태든 간에."
그날 밤, H는 홀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한숨을 내쉬었다.
핸드폰을 꺼내 민주와의 대화를 다시 읽었다.
그의 마음속에는 두려움과 사랑, 혼란이 가득했다.
그리고 민주 역시 잠들지 못한 채 창밖을 바라보았다.
‘이대로 계속 가도 괜찮을까?’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뒤엉켜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